“힘든 상대였지만 투철한 애국심, 제조업 부활에 대한 사명감만큼은 우리 공무원도 배우면 좋겠다 생각했다.”
한미 무역 협상을 일선에서 담당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자신의 미국 측 카운터 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러트닉은 협상 내내 무리한 요구를 들이대며 우리 측 애를 먹였던 인물이다. 러트닉의 64년 인생에서 일대(一大) 사건을 하나 꼽는다면 9·11 테러일 것이다. 당시 그가 회장 겸 CEO로 있던 캔터 피츠제럴드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의 101~105층에 입주해 있었는데 친동생 게리 러트닉을 비롯해 자신의 친구·동료 656명을 순식간에 잃었다.
러트닉도 9·11 테러의 희생자 중 한 명이 될 뻔했지만 이날이 마치 장남 카일의 유치원 첫 등원일이라 아들을 데려다주는 바람에 출근이 평소보다 늦었고, 그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후 주변에 “먼저 간 이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순식간에 직원 3분의 1을 잃었지만 절치부심해 회사를 전 세계 1만3000명을 거느린 기업으로 다시 키웠다. 러트닉은 올해 상원 청문회에서 “아직도 9·11 때 이야기를 하면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며 “아들 카일을 데려다줬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테러 다음 날인) 9월 12일 생존한 직원들과 전화 회의를 주재하며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며 “33일 연속으로 하루에 20번의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회사를 재건해 그날 우리가 잃은 658가구를 돌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러니 아들에 대한 러트닉의 감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 22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아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며 “약혼을 축하한다” “사랑하고 정말 자랑스럽다”고 했다. 카일의 약혼자인 크리스를 향해서는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한다”며 “앞으로의 미래가 너무 기대된다”고 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도 댓글을 통해 축하의 뜻을 전했다. 스탠포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카일은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인 ‘노텔’ 등에서 경험을 쌓은 뒤 올해 2월부터 캔터 피츠제럴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회사에 다니던 직원이 9·11 테러를 목숨을 잃었고, 훗날 그 아들이 입사했는데 러트닉은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냐”며 “고통스러운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