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인 아시아정책연구소(NBR)는 12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 정책 집행이 광범위하게 보호무역적인 성격으로 인식되고 있고 글로벌 모범 사례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며 “경쟁 당국의 법 집행 방식이 한국 내에서는 정상처럼 보일 수 있으나 예측 불가능하고 정치화되어 있으며 자국 기업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규제 환경을 우려한다”고 했다. 한국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 기업들은 과도하게 공격적인 조사 관행,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 장기간 조사에 따른 사업 피해 등을 문제 삼았는데 NBR은 “의회 내 초당적 우려와 트럼프 정부의 비(非)관세 장벽 전반에 대한 관심을 고려해 무역대표부(USTR)와 법무부(DOJ)에도 설명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NBR은 이날 비상근 펠로로 있는 나이절 코리가 작성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KFTC)의 정책 집행이 미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 질적 증거와 분석’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이뤄진 한미 간 무역 협상에서 미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같은 ‘디지털 장벽’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미 조야(朝野)에서는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기업들의 아웃리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보고서는 “유럽연합(EU) 등 다른 주요국 규제 기관과 비교해도 공정위의 미국 기업에 대한 집행 조치가 규모, 성격 면에서 두드러진다”며 “당국의 표적화되거나 정치적 동기가 있는 조치는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시장을 왜곡하며 혁신,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했다.
불이익을 우려해 익명을 요구한 미 기업들은 NBR과 진행한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공정위의 조사 관행을 특히 문제 삼았다. “조사 개시 기준이 낮고, 불필요하게 공격적인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보 요청과 데이터 압수 규모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영장이 없어도 사실상 비슷한 효과를 지니는 ‘임의 제출’ 같은 조사 방식을 특히 문제 삼았다.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에 대해서도 그간 우리 당국이 의회 등을 상대로 여러 차례 그 취지를 설명했지만 “새 플랫폼 법안을 제정할 경우 미 기업에 대한 감독의 빈도와 강도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지금이 공정위의 접근 방식을 재평가해야 할 중요한 시점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NBR은 또 “공정위가 같은 상황에 있는 중국, 한국 기업보다 미국 기업을 더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한국에서 영업하는 중국 경쟁사들은 상대적 시장 점유율과는 무관하게 (불공정 행위를) 간과하고 있다”고 했다. 무역 수장인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도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국내 플랫폼법과 관련해 “해당 법은 중국 기업은 놔두고 애플·구글 같은 미국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여전히 잘 지내겠으나 막대한 무역 적자를 감수한 대가가 우리 플랫폼 회사에 대한 가혹한 차별이라면 끔찍한 그림”이라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NBR은 “이재명 대통령이 공격적인 경쟁 정책을 집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신임 (주병기 위원장은) 공정위의 집행 활동이 정치적 신호와 부합하도록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며 “미 기업에 대한 조사가 강화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NBR 측이 이번 조사 결과를 USTR과 경쟁 당국 중 하나인 DOJ 등에 설명했다는 점이다. 국내 시장에서 활동하는 빅테크 기업의 광범위한 로비 속에서 이들이 제기한 ‘불공정하고 기울어진 경쟁 정책 집행’이 통상 압박을 높이는 또 다른 현안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공정위의 조치가 명백한 비관세 장벽으로 기능해 한국 기업을 보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트럼프 정부, 미 의회가 비관세 무역 장벽에 계속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본 보고서 인터뷰에 응한 우리 기업들이 제기한 우려 사항은 정책적 우선순위로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