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전 연방 하원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이 지난 4일 치러진 뉴욕 시장, 뉴저지·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며 모처럼 진영이 고무된 모습이다. 경합주 7곳을 모두 내준 지난 대선 참패 후 리더십이 사실상 진공 상태였는데, 폴리티코는 9일 “2024년 대선 패배의 아픔을 딛고 내년 11월 있을 중간선거를 향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91년생 무슬림·비주류인 조란 맘다니의 당선으로 강성 진보 세력이 부상하고, 두 차례 하원의장을 지낸 막후 실력자 낸시 펠로시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추후 1년 동안 당의 방향성과 2024년 대선 패배 요인 분석 등을 놓고 신구(新舊) 세력 간 치열한 주도권 경쟁, 노선 투쟁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 선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켄 마틴은 “민주당 역사상 가장 역사적인 비(非)선거 연도 선거 중 하나였다”면서도 “야당이 중간선거에서 유리할 것이란 통념은 함정이다. ‘민주당이 이길 테니 좀 편하게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대통령 임기 2년 차에 실시돼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는 중간 선거(11월)는 야당에게 유리한 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 선거에서 승리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해야 임기 후반부에도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고,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입맛에 맞는 후보를 내세워 정권 재창출을 도모할 수 있다. 정권의 명운(命運)이 여기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이 8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시민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물가 같은 민생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고, 이를 트럼프 정부에 대한 악화된 여론과 연결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급진적인 좌파 정책을 배격했는데,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46.3%를 득표한 버지니아에서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인 애비게일 스팬버거를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상대인 공화당 얼 시어스 후보가 성(性) 소수자 권익 같은 사회 문제를 부각시키며 애비게일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캠페인을 펼쳤지만, 연초부터 계속된 연방 정부 구조조정과 악화된 경제 지표 앞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마이키 셰릴 뉴저지 주지사 당선자 역시 해군 헬기 조종사, 연방 검사로 재직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보수 성향이 우위인 켄터키주(州)에서 2019년부터 주지사로 있는 민주당 소속 앤디 베시어는 “민주당은 유권자들의 일상적 관심사에 레이저처럼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선 패배 후 리더십 진공 상태였던 당에서 사실상 ‘지도자’ 노릇을 하던 펠로시의 선제적 정계 은퇴 선언으로 세대교체 공간이 열렸다는 점이다. 폴리티코는 “펠로시의 은퇴 선언은 당이 왼쪽으로 선회할지 중도로 선회할지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맘다니의 부상을 계기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같은 당내 강경 진보 세력이 전면에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보좌관 출신이 펠로시 은퇴로 공석이 된 샌프란시스코 지역구 출마를 위해 1년 전부터 뛰고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맘다니가 선거 과정에서 내세운 급진적 구호들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통할지, 세계 자본주의 심장인 뉴욕의 지도자로 수권(受權) 능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 여부 등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가 지난 7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차기 당내 지도자로 누가 가장 적합한가’를 물었을 때 “모르겠다”(21%)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아무도 없다”는 응답도 전체의 11%나 됐다. 인물별로 보면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16.1%),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7.7%),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7.4%),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6.2%) 순이었다. 중도 성향 민주당 싱크탱크인 ‘서드 웨이’의 라네 에릭슨 부사장은 언론에 “이번 승리는 다시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는 느낌”이라면서도 “이게 반드시 새 지도자의 부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직 당의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