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북한 김정은.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동이 불발된 뒤, 미국이 잇따라 대북 제재를 발표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4일 “북한의 사이버 범죄 등 다양한 불법 공작을 통해 발생한 자금을 세탁하는 데 관여한 북한 국적 개인 8명, 북한 소재 기관 2곳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바로 전날인 3일에는 미 국무부가 “유엔을 통해 북한산 자원의 불법 환적에 관여한 제3국 선박을 제재하겠다”고 했다. 유엔 대북 제재는 상임이사국인 중국·러시아의 거부권 남발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이 때문에, 미국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첫 대북 제재를 발표하는 배경에, 트럼프의 잇따른 만남 요청에 별 반응을 하지 않았던 김정은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 재무부가 ‘특별 제재 대상(SND)’ 목록에 올린 개인은 장국철·허종선 등 8명이다.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장·허는 ‘퍼스트 크레디트 은행’(북한 ‘제일신용은행’)을 통해 530만달러(약 76억3000만원) 상당의 암호 화폐 등 자금 관리를 도운 북한 은행가들”이라며 “이 자금 일부는 과거 미국을 표적으로 삼은 북한 랜섬웨어 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했다. 중국 선양·단둥 등에서 IT 인력 파견 조직을 운영하는 ‘조선만경대 컴퓨터기술회사(KMCTC)’와 대표인 우영수도 제재 대상이 됐다. 이들이 파견하는 IT 인력들은 불법 수익의 출처를 숨기기 위해 중국 국적자를 금융 거래 대리인으로 활용해 왔다.

재무부는 “북한 사이버 행위자들은 다른 어느 국가도 따라올 수 없는 규모로 고도의 사이버 기반 간첩 활동, 파괴적 사이버 공격, 금융 절도를 수행하고 있다”며 “지난 3년간 주로 암호 화폐 형태로 30억달러(약 4조3200억원) 이상을 갈취했다”고 밝혔다. 존 K. 헐리 재무부 테러·금융 정보 담당 차관은 “북한 정권이 후원하는 해커들은 핵무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금을 탈취하고 세탁한다”며 “이들은 평양의 무기 개발에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미국과 세계 안보를 직접 위협한다”고 했다.

전날 미 국무부 관계자는 “북한산 석탄, 철광석을 운반해 중국에서 하역한 시에라리온 국적 선박 등을 적발했다”며 대북 제재를 관장하는 유엔 안보리 ‘1718위원회’가 선박 7척을 즉시 제재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제안은 단순한 관료적 절차가 아니다”라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는 수출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제재와 미·북 정상 회동 무산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도 “봄부터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며 “특별한 연관성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