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정부를 폐쇄한 지 34일 1시간 7분 42초째….”
4일(현지 시각) 현재 미국 백악관 웹사이트 화면 상단에는 디지털 타이머가 초(秒) 단위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1일 시작된 연방 정부 셧다운(업무 중단)이 이날로 35일째에 접어든 가운데, 지속 기간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그 책임을 민주당에 돌린 것이다. 셧다운이 이날 자정(한국 시각 5일 오후 2시)을 넘겨 5일에도 계속될 경우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2018년 12월 22일부터 이듬해 1월 25일까지 계속된 역대 최장 기록(35일)을 넘어서게 된다.
셧다운은 의회가 정해진 시한 내에 다음 회계연도의 정부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연방 정부 업무가 중단되는 사태를 뜻한다. 셧다운이 발생하면 군, 경찰, 소방 등 필수적인 기관을 제외한 정부 운영이 중단된다. 필수 기관을 제외한 공무원들은 강제 무급 휴가를 떠나야 한다. 이에 따른 피해가 확산하고 있지만, 양당이 ‘강 대 강(强對强)’ 대치를 이어가고 있어 당분간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곳곳에서 피해 속출
미국에선 주말인 1~2일 사이에만 항공편 400편 이상이 취소되고 1만편 넘게 지연됐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항공 관제사들이 셧다운 여파로 급여를 받지 못하자 결근하거나 휴가를 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달 말에는 여행객 수요가 몰리는 추수감사절 연휴가 있어 항공 대란도 예상된다. 숀 더피 교통 장관은 3일 언론 인터뷰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모든 공역(空域)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민주당 덕분에 대규모 항공 지연 사태가 발생하고 승객들이 보안 검색대에 5시간씩 줄을 서고 있다”고 했다.
백악관은 셧다운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매주 150억달러(약 21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미국 경제성장률이 연 1~2%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방 공무원 약 75만명은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양복을 입고 거리에서 핫도그를 파는 국세청 공무원의 사례를 소개하며 “공무원들이 몇 주 동안 급여 없이 버티다 ‘투잡’을 뛰는 중”이라고 했다.
저소득층에 한 달 최대 300달러(약 43만원)까지 식료품 구입비를 지원하는 영양보충지원프로그램(SNAP)도 재원이 바닥나 지난 1일부터 중단됐다. 농무부는 “(지원을 계속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법원이 비상 기금을 활용하라고 판시하자 태도를 바꿔 전체 지원액의 절반 정도인 46억50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미 국민 8명 중 1명이 지원 대상인 SNAP 중단의 여파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움직인 것으로 해석됐다.
◇ 여야 “나쁠 것 없다”… 사태 장기화
셧다운은 2026 회계연도(10월 1일 시작) 정부 예산안을 둘러싼 공화·민주 양당의 대치 때문에 벌어졌다. 공화당은 전년 수준의 예산 규모를 유지하는 임시 예산안을 처리해 일단 정부 운영을 정상화한 뒤 쟁점 현안을 협상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이른바 ‘오바마 케어’라 불리는 공공 의료보험 보조금 연장에 합의하지 않으면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현재 상원(총 100석)은 공화당이 53석으로 우세하지만, 예산안을 처리하려면 찬성 60표가 필요해 공화당 단독으로는 통과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상원의 13차례 표결 시도가 모두 부결로 끝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의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정부 업무 재개를 요구하라’고 지지자들을 부추겼다. 2일엔 방송 인터뷰에 출연해 의결 절차를 일방적으로 개정하는 ‘핵 옵션’을 공화당에 주문했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니, 의결 정족수를 비롯한 요건을 완화해 단독으로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이번 셧다운이 장기화된 것은 여야의 정치적 계산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측근 중 상당수는 이번 국면을 기회로 본다. 보수 진영의 오랜 신념인 ‘작은 정부’를 실현할 적기라는 것이다. ‘실세’로 통하는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OMB) 국장이 법원에 “최대 1만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역시 대선 패배 여파로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진영 내 사기를 고취시키고 지도부가 존재감을 발휘할 기회로 보고 있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 유인이 적은 편이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당파적 교착 상태가 새 국면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의회가 합의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다만 뉴욕시장 선거 등 트럼프 2기의 첫 중간 성적표가 나올 4일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협상을 위한 정치적 공간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