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협상을 타결한 가운데,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30일 “한국이 시장을 100% 완전히 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이 ‘시장 개방’이 정확히 무엇을 언급하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또 우리 정부가 관세 인하 반대급부로 약속한 3500억 달러(약 498조원) 대미(對美) 투자와 관련해 “이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승인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한국의 주력 수출 제품인 반도체에 대해 최대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예고한 가운데, 러트닉은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한미 간 거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했다.

러트닉은 한미가 관세 협상을 타결한 다음 날인 2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러트닉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금과 관련, “트럼프는 조선업을 첫 번째 투자 분야로 지정해 미국 내 선박 건조에 최소 1500억 달러를 투자했다”며 “또한 한국의 유수 조선업체들이 필라델피아에서 핵 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 미국의 조선업 재건은 국가 안보에 필수”라고 했다. 또 트럼프가 알래스카주(州)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을 포함한 미국 내 건설 프로젝트에 “200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라고 했다. 향후 투자위원회를 만들어 구체적인 투자 프로젝트를 협의하고 ‘상업적 합리성’을 따져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었다.

러트닉은 “한국이 시장을 100% 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는데 이게 정확히 무얼 가리키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쌀과 소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시장에서 추가 개방을 막았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한미가 큰 틀의 무역 합의에 이르렀을 때도 우리 협상단의 설명과 달리 트럼프가 “한국이 미국산 쌀 시장에 대한 역사적 시장 접근권을 부여했다”고 했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미국산 쌀에 역사적 시장 접근권을 제공할 것”이라 말해 진실 공방이 있었다. 트럼프는 29일에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한국 기업과 기업가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금액이 60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 했는데 세부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폴리티코는 “한미 간에 아직 공동 성명이 발표되지 않은 것은 양측이 세부 사항을 여전히 조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앞서서 무역 합의를 체결한 일본의 경우 내용을 명문화했다.

러트닉은 한국산 자동차와 차(車) 부품에 대해 15%의 관세가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는 자동차에 대해 2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한국은 무역 합의가 지연돼 일찌감치 15%로 자동차 관세가 인하된 일본·유럽연합(EU)과 비교하면 불이익이 상당했다. 반면 “반도체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 주요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는 정부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러트닉 발언만 놓고 보면 반도체 관세는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상무부는 현재 수입 제품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경우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8월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강조하며 “1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했었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