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정상회담 장소인 국립경주박물관 한 켠에 전시된 트럼프 굿즈를 함께 보며 대화를 하고 있다. /백악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관세 협상을 타결한 가운데, 백악관은 다음 날 X(공식 계정)에 “항복은 절대 없다(Never Surrender)”는 문구와 함께 두 정상이 ‘트럼프 굿즈(Trump Goods)’를 같이 보고 있는 사진을 한 장 올렸다. 트럼프와의 유대 형성을 위해 회담 장소인 국립경주박물관 한쪽에는 트럼프와 멜라니아 여사의 저서 및 한국어 번역본, 텀블러, 머그컵, 테디 베어, 버지니아주(州)의 ‘트럼프 와이너리’ 와인 등 트럼프 일가와 관련된 온갖 굿즈를 한데 모아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트럼프가 자신과 여사의 저서 번역본을 특히 좋아했다”고 했다.

백악관은 그중에서도 트럼프가 검은색 티셔츠를 가리키고 있고, 이 대통령은 빨간색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가리키며 웃고 있는 사진을 골랐다. 백악관 수석 사진사인 대니얼 토록이 촬영한 것으로 “한국에서의 놀라운 순간”이라고 했다. 티셔츠 속 사진은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관련 혐의로 형사 기소된 트럼프가 2023년 조지아주(州) 풀턴 카운티 검찰에 출석했을 당시 찍은 머그샷이다. 퇴임 후 끝없는 사법 리스크에 시달린 트럼프가 정치적으로는 저점을 찍은 가장 암울했던 시기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머그샷은 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그 자체로 큰 화제가 됐는데, 검찰은 트럼프가 보석금 20만 달러를 지불하고 석방된 지 1시간 만에 이를 공개했다. 화가 난 듯 눈을 치켜뜨고 올려다보는 트럼프의 표정은 이후 그를 상징하는 사진이 됐다. 트럼프가 이 사진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는데, 올해 1월 정권 인수위원회가 공개한 ‘대통령 공식 사진’도 비슷한 구도로 찍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정권인수위원회가 공개한 '대통령 공식 사진'(왼쪽)과 2023년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가 공개한 트럼프 머그샷. /AP 연합뉴스

트럼프는 당시 이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올리며 “항복은 절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코닉한 머그샷을 이용해 티셔츠, 텀블러 등 각종 굿즈를 팔아 2024년 대선을 위한 선거 자금을 모았다. 트럼프를 추종하는 매가 지지자들은 자신에 대한 기소가 “정의의 졸렬한 모방” “미국에 매우 슬픈 일이고 선거 개입”이라는 트럼프에게 열광하며 유세장에서 ‘항복은 절대 없다’는 구호를 따라 외쳤다. 지난해 7월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카운티 유세 당시 총격을 받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캠페인을 재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는 “어떤 것도 나를 누를 수 없다”며 “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기세를 타고 11월 선거에서 경합주(州) 7곳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하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대통령실 전속 카메라가 촬영한 회담 영상을 보면 트럼프는 굿즈가 전시된 공간 앞에서 상당 기간 머물며 이 대통령과 대화를 했고, 이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으로 두 정상이 훨씬 더 가까워졌다며 트럼프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연락하라”며 다시 백악관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도 표명했다고 했는데, 굿즈 전시로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 한 외교·안보 라인의 전략이 일정 부분 통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워싱턴 DC의 한 소식통은 “향후 트럼프와 이 대통령 관계를 얘기할 때마다 회자될 만한 아주 강력(powerful)하고, 상징적인 사진”이라고 했다. 일본 역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고(故) 아베 신조 총리가 사용한 퍼터, 금박 기술로 제작한 황금색 골프공 등 트럼프와 사연이 있는 다양한 굿즈를 들이밀었는데 트럼프는 “나는 항상 일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었다”며 “궁금하거나 도와줄 일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이 이날 트럼프에게 선물한 특별 제작 ‘천마총 금관 모형’ 역시 트럼프 입장에서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셧다운(연방정부 폐쇄)이 한 달이 다 돼가는 정치적 교착 상태 속 미 전역에서 진보 지지세가 강한 도시들 위주로 트럼프에 반대하는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 선물을 받은 뒤 수행원에게 자신의 기념관에 전시하라고 당부할 정도로 만족감을 드러냈는데, 워싱턴포스트(WP)는 “노 킹스 시위가 열린 지 2주도 채 안 된 상황에서 트럼프가 금관을 선물받았다”고 했다. 트럼프는 그간 영국·일본 등 왕실이 있는 국가에 대한 호감이 남달랐는데 우리 외교 라인에서 이런 부분도 감안해 회담 장소인 ‘고도(古都) 경주’ 이미지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 앞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