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8일 함께 월드시리즈 경기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다카이치 오른쪽은 통역 담당인 다카오 스나오 외무성 일미지위협정실장이다.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후 처음 일본을 방문해 28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와 정상회담을 치르고 “미·일 동맹의 황금기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가운데, 이날 회담에선 낯익은 얼굴이 카메라에 계속해서 잡혔다. 다카이치에게 밀착해서 통역을 담당한 다카오 스나오(高尾直) 외무성 일미지위협정실장이다. 다카오는 트럼프가 ‘위대한 친구’라 부른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영어 통역 출신으로,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 간의 특별한 우정을 일컫는 말)’를 과시했던 트럼프와 아베가 만날 때마다 그 자리에 있었다. 트럼프가 “작은 총리 같다” “이렇게 유능한 외교관이 있는지 몰랐다”고 호평했을 정도로 친숙한 편인데, 중요한 순간마다 일본 외교의 ‘구원 투수’로 호명돼 등판을 하고 있다.

미국 출생인 다카오는 원어민급 영어 실력을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대 법대를 졸업했고, 2003년 외무성에 들어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북미(北美) 업무를 담당했고 워싱턴 DC·베이징의 공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다카오는 전문 통역사가 아닌 직업 외교관 출신이지만, 2016년 아베가 금장 골프 클럽을 들고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와 만났을 때부터 영어 통역을 도맡았다. 14차례 정상회담, 36차례 통화, 5차례 골프 회동 등 트럼프와 아베가 함께한 순간의 대부분을 함께한 산증인인 것이다. 특히 두 정상의 골프 회동 중 카트 뒷자리에 동석해 아베의 일본어를 영어로 전달하는 모습이 큰 화제가 돼 ‘수퍼 통역’이란 별명을 얻었다.

지난 2019년 5월 26일 일본의 '모바라 컨트리 클럽' 골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카트에 탑승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 뒤쪽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사람이 통역사인 일본 외교관 다카오 스나오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1기 때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맷 포틴저는 언론에 “질주하는 골프 카트 뒤에 매달린 채로도 일본 지도자의 경쾌하고 단조로운 말투를 울림이 있는 영어로 전달했다”며 “그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든 일본 외교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카오는 미·일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관련 영상, 골프 규칙 등을 수시간 동안 연구해가며 통역을 준비했다고 한다. 단순히 영어 실력뿐만 아니라 눈치나 상황 판단 능력 등이 뛰어나 “같은 얘기도 기분이 좋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의 눈에도 들었는데, 과거 다카오를 ‘작은 총리’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가 농담 삼아 다카오를 ‘차기 총리’라 표현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지면서 그가 중국 주재 일본 대사관에 부임했을 당시 서방 외교관들 사이에서 꽤 유명세를 탔다”고 했다.

일본 외교는 이렇게 포착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미 외교 ‘자산’이 된 다카오를 중요한 순간마다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올해 2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첫 대면을 할 때도 외무성 간부로는 이례적으로 총리 통역을 맡아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요미우리신문)는 얘기가 나왔다. 다카오는 현재 외무성에서 미군 주둔과 관련된 법과 제도 등을 관할하는 일미지위협정실장을 맡고 있다. 트럼프 2기의 남은 3년여 임기 동안 미·일 간에 다양한 외교·안보, 경제·무역 현안 등이 산적해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양자(兩者) 외교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이 2019년 도쿄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있데. 가운데는 당시 아베의 통역을 담당했던 다카오 스나오 외무성 미일지위협정실장이다. /일본 총리관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