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첫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말레이시아·캄보디아와 상호 무역 협정을 체결했고, 태국·베트남과도 무역 협정과 관련된 기본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캄보디아와는 공동성명과 팩트시트, 태국·베트남과는 프레임워크를 통해 합의 내용을 명문화했다. 한국의 경우 지난 7월 큰 틀의 합의를 이뤘지만 우리 정부가 관세 인하 반대급부로 약속한 3500억 달러(약 503조 9300억원) 대미(對美) 투자금의 성격·구조 등을 놓고 이견이 있어 트럼프 방한(訪韓)을 계기로 타결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이날 “트럼프는 수입품 관세를 낮추고 무역 장벽을 제거해 미국의 경제적·국가 안보 이익을 강화하는 역사적인 무역 협정을 계속해서 체결하고 있다”며 “이 획기적인 협정들은 미국이 관세를 유지해 상품 무역 적자를 줄이면서도 우리 농부, 목장주, 노동자, 제조업체 등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개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말레이시아·캄보디아·태국·베트남의 동료들이 미국과의 보다 균형 잡힌 무역 관계 달성을 위해 협력하고 헌신해 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리어는 트럼프의 한국·일본 방문에도 동행할 예정이다.
백악관이 홈페이지에 발표한 말레이시아와의 합의문을 보면 트럼프가 지난 4월 부과한 19% 상호 관세는 유지하면서도 쌀을 포함한 미국 농산물에 대한 “대폭적인 시장 개방을 약속받았다”고 했다.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디지털세 부과를 금지하기로 했는데,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해소는 USTR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어젠다 중 하나다. 민간 부문에서는 말레이시아가 ▲항공기 30대 ▲반도체·항공우주 부품·데이터센터 장비 1500억 달러어치 ▲연 500만 톤의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구입하기로 했다. 또 미국 내 7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자금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백악관은 “재무부와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이 공정한 환율 정책을 유지하고 불공정한 평가 절하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해각서(MOU) 체결을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와도 19% 상호 관세는 유지하면서도 ▲수입 허가 및 규제 승인 절차 간소화 ▲미국의 위생 검역 및 식품 안전 기준 인정 ▲미국산 농식품에 대한 미 규제 기관 발급 인증서 인정 같은 비관세 장벽 완화를 명시했다. 미국은 이번 트럼프 방문을 계기로 “태국·베트남과도 무역 협정과 관련된 기본 합의에 도달했다”며 이를 ‘프레임워크’ 형태로 명문화했다. 태국과 발표한 내용을 보면 미국산 공산품·농산품의 약 99% 품목에 대한 ‘관세 철폐’를 받아내기로 했고, 역시 ▲미국산 차량에 대한 미국 내 안전·배출 기준 인정 ▲식품의약국(FDA) 인증 의료기기 및 의약품 승인 절차 간소화 같은 비관세 장벽 완화를 포함했다. 백악관은 또 “인증을 받은 미국산 육류와 가금류에 대해 태국 정부가 수입을 신속 승인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태국은 미국산 대두 등 26억달러어치, 미국산 항공기 80대 등을 구매하기로 했다.
베트남과는 상호 관세 20%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산 공산품·농산품이 시장 접근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미국산 차량에 대한 미국 내 안전·배출 기준 인정 ▲미국산 의료기기·의약품 수입 허가 절차 개선 ▲지식재산권 조약 의무 완전 이행 등 미국 정부의 주요 관심 분야에 대한 규제 완화 및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미국산 농산품에 대해서도 FDA 등 미 규제 기관의 인증서를 인정하기로 했고, 검역·위생 기준 등 수입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베트남 국적 항공사인 ‘베트남항공’은 미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에서 50대를 구매하기로 했고, 베트남 기업들은 총 29억 달러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