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주미 대사(왼쪽)가 22일 워싱턴 DC의 국무부 청사에서 크리스토퍼 랜다우 부장관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주미한국대사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을 전후로 워싱턴 DC의 로비 업체들이 정권에 줄을 대려는 주요 국가‧기업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주미 한국 대사관의 관련 예산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비철금속 제련 회사인 고려아연 한 곳이 과거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몸담았던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MPA)’를 고용하며 지불한 돈이 50만 달러(약 7억1800만원)였는데, 정작 정부 각 부처에서 공무원들이 파견돼 ‘작은 정부’라 불리는 대사관이 공공 외교‧법률‧홍보 자문 등의 목적으로 올해 배정한 예산은 18억9300만원에 불과했다. 총 4개 회사를 고용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로비스트, 대형 로펌, 어드바이저리 펌(advisory firm‧자문 회사)까지 많게는 20곳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가 국회 외통위 소속인 국민의힘 김건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주미 한국 대사관 고용 자문 회사’ 내역 자료를 보면 올해 의회‧홍보 관련 자문 회사 고용 관련 예산은 18억9300만원이었다. 지난해(17억9300만원)보다는 1억원 소폭 증가했지만, 4년 전인 2021년(19억9200만원)과 비교하면 오히려 9900만원이 줄어든 것이다. 대사관은 ‘미 의회 상‧하원 관련 자문’을 위해 ▲브라운스틴 파버 하야트 슈렉 ▲토머스 캐피털 파트너스 2곳, ‘공공 외교‧홍보 자문’을 위해 ▲쿠어비스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 2곳을 각각 고용했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개로 통상 현안이 많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월 로펌 ‘아널드 앤드 포터’와 1년 36만 달러짜리 계약(10회 분납 조건)을 갱신했다. 산업부는 2020년부터 이 회사를 쓰고 있다.

외교부가 밝힌 주요 자문 내역은 ▲현안에 대한 미 의회 내 이해 제고 ▲한미 관계 및 한반도 관련 의회 동향 ▲우리 고위 인사(정상‧장관급 포함) 방미(訪美) 일정 준비 ▲미 주요 언론계 대상 네트워크 확대 등이다. ‘브라운스틴…’은 워싱턴 DC의 대형 로펌 중 하나로 지한파(知韓派) 정치인이자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의 직속 상사였던 에드 로이스 전 하원 외교위원장이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토머스…’는 한국계 김모씨가 운영하는 사실상의 1인 로비스트 회사로, 지난 10년 넘게 대사관 일감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 회사 홈페이지를 보면 2016년 이후 업데이트된 것이 없다. 플로리다주(州) 기반의 MPA는 트럼프 정부 2기의 실세인 와일스가 과거 일했다는 이유로 ‘발라드 파트너스’와 더불어 지금 워싱턴 DC에서 가장 잘나가는 로비 회사 중 하나지만, 우리 대사관이 맺은 건 2개월짜리 단기 계약이었고 이마저도 계엄‧탄핵 정국이 겹치면서 제대로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강경화 주미 대사는 지난 17일 국정감사 업무 보고에서 “한국의 상황을 미국에 제대로 알리고 우리의 핵심 정책과 한·미 관계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 발신을 위해 언론‧학계 등 네트워크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공공 외교 인력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공공 외교 분야만 놓고 보면 일본 대사관의 관련 인력이 한국에 비해 2배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구금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비자 제도 확충, 한·미 조선 협력을 위한 미국 내 존스법‧번스-톨레프슨 수정법 개정 모두 공공 외교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다. 워싱턴 DC의 경우 공관장 개인의 역량도 중요한 편인데, 전임 대사의 경우 전직 대통령 및 상·하원 의원들이 대거 회원으로 있는 한 사교 클럽 가입을 타진해 성사됐지만 이재명 정부의 ‘2주 내 일괄 귀국’ 지시로 인해 이를 활용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9월 대정부 질문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