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왼쪽)이 22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글로벌 에너지 서밋'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브룩 롤린스 농무부 장관.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탄소 배출을 마치 지구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인 것처럼 얘기했는데 근거가 될 만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제가 자란 콜로라도 덴버에선 어렸을 때 인구 증가, 경제 성장 때문에 환경이 파괴된다고 했는데 정작 지금은 공기가 엄청 깨끗해졌어요. 어릴 때 한 번도 보지 못한 무스와 곰도 자연 곳곳에 있고요. 우리 동맹들도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공개적으로 그런 말을 하기 어렵다’면서도 뒤에 와서는 다 동의한다고 말합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22일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렇게 말하자 청중에서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행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추종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 가장 돋보이는 싱크탱크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연구소(AFPI)’가 주최한 것이다. 트럼프의 든든한 후원자인 ‘석유 거물’ 해럴드 햄 콘티넨털리소스 창립자를 비롯해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브룩 롤린스 농무부 장관, J D 밴스 부통령의 오하이오주(州) 지역구를 물려받은 존 A. 허스테드 공화당 상원의원, 애슐리 힌슨 하원의원, 루크 린드버그 농림부 차관 등이 참석해 ‘아메리카 퍼스트’ 에너지 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디왈리' 축하 행사에 참석해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드릴, 베이비, 드릴’이란 그의 선거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석유·가스 같은 화석연료 개발과 활용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풍력·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해선 매우 비판적인 입장인 반면, 인공지능(AI) 시대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원자력 발전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라이트는 이날 “사람들은 나에게 오로지 석유·가스만 지지한다고 말하는데 우리 정부는 미국의 원자력 산업을 재가동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원자력은 바람이 불던 해가 뜨던 24시간 내내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에너지 소스”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전 세계 원자로가 모두 중국·러시아 두 나라에 의해 건설됐다”며 “이런 나라들에 주도권을 넘기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라이트는 “미국을 원전 기술의 선두 주자로 만들 것”이라며 핵 재활용, 상업용 핵융합 등에 있어서 “눈에 띄는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필요할 경우 미국이 에너지 정책을 동맹·파트너국에 압박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라이트는 이날 “다음 달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30)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후변화는 사기극이다. 다른 나라 대표단도 이 말을 들으면 좋아한다”고 했다. 미국은 최근 국제해사기구(IMO)가 추진하던 선박 탄소 배출 규제를 좌절시켰는데, 라이트는 상사인 트럼프를 가리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메가폰을 갖고 있다”며 20국 이상을 접촉해 반대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담론을 지배했던 ‘기후 넌센스’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브룩 롤린스 농림부 장관 역시 “많은 나라가 넷제로라는 미친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며 “(넷제로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인) 바이오에탄올의 경우 미국 농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제 세계를 이끄는 에너지 지배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넷제로에 대해 “이건 미국인들에게 좋지 않은 멍청한 아이디어로, 필요하면 군대를 투입해 두들겨 패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롤린스는 이날 트럼프의 무역 협상 스타일에 대해서도 귀띔을 했는데 “대통령은 직접 전화를 걸어 여러 나라와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며 “우리는 현재 수십 건의 협정을 체결했고, 그중에는 유럽연합(EU)·일본 등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대형 협정들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가자 먼저 무역 협정을 체결한 영국의 경우 “일요일 오후 3시에도 대통령이 ‘날짜 따위 신경 안 쓴다’며 (키어 스타머)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며 “가족과 함께 축구를 보고 있더라. 대통령이 그 협상을 사실상 마무리 지었고, 미 농민들을 위해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협정들을 성사시켰다”고 했다. 다만 롤린스는 이날 한국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이자 보수 진영의 큰손인 해롤드 햄 콘티넨털리소스 창립자(왼쪽)가 22일 '글로벌 에너지 서밋'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덴마크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칼라 샌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콘티넨털리소스의 햄 창립자는 “인공지능 산업에 드라이브를 걸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미국의 에너지 사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좋은 일임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에너지 제국을 이룬 햄은 보수 진영의 큰손으로, 그의 회사는 SK E&S와도 공동으로 셰일가스 사업을 한 적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한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햄에 대해 “저 사람이 나에게 석유에 대해 많은 걸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했다. 햄은 이날 중국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재난, 전쟁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해 에너지부가 관리하는 ‘전략 비축유(SPR)’를 확충할 것을 제안했다. 막후에서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그는 주무 분야 장관들을 호명하며 칭찬하면서도 “아직 할 일이 많다”며 “우리는 하루하루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