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최근 한국과 미국의 조선 협력의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인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 5곳에 대한 전면 거래 금지 제재를 발표한 가운데, 미 정부에서 대(對)중국 외교 경험이 풍부한 전직 고위 당국자들은 20일 “미국의 규칙과 규정을 준수하는 외국 기업들을 위협하고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의 핵심 메시지”라며 “경쟁 기업의 특정 행동을 빌미로 자신들의 과도한 대응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중국식(式) 외교술이다. 수사(修辭)적인 차원의 긴장 완화가 있더라도 실질적인 완화는 절대 원하지 않고, 이번 제재도 절대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직 당국자는 이날 오전 워싱턴 DC에서 한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지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4일 반(反)외국제재법에 근거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인 한화쉬핑·한화필리조선소 등 5곳을 콕 집어 제재를 발표하고 추가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미·중 패권 경쟁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동맹국인 한국에도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이 인사는 “2018년 이후 중국이 개발한 수단 중 하나가 반외국제재법이었고 이번이 발동된 첫 사례”라며 “‘미국이 중국에 가하는 제재를 준수한다면 당신을 제재할 것’이라 선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이런 류의 제재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트럼프는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6년 만의 대면(對面)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또 다른 미국 측이 제시할 주요 의제로는 대두 등 상업 수출, 펜타닐 문제, 희토류·광물 등을 포함한 공급망 안정 방안, 중국계 플랫폼인 틱톡의 미국 사업권 매각 문제 등을 꼽았다. 중국은 기술 규제 및 관세 완화, 인적 교류 일부 정상화, 대만 관련 논의를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획기적인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너무 크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미·중이 지난 15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새 시대의 입구에 있고 국가 안보, 경제, 기술, 거버넌스 등 어느 영역에서 무얼 갖고 싸울지 결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외교·안보 분야 전 고위 당국자는 “중국은 1기 때는 미국과의 경쟁에 제대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2기 때는 미국의 동맹도 겨냥하고 있다”고 했다. 또 미국이 대중 견제에 있어서 동맹·파트너국과 함께하기보다는 양자(兩者) 간 ‘직거래’를 선호하는 반면 “중국은 다자(多者)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나라를 모으고 있다”며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북한·중국·러시아 3국 간 밀착을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했다. 트럼프 1기 때 중국이 60~70개 희토류 점유율을 90% 이상 갖고 있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거의 변한 게 없어 놀랍다”고도 했다. 이 인사는 현재 미·중 관계의 핵심 인물 3인으로 트럼프 본인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데이비드 퍼듀 주중 미국 대사를 꼽았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경우 과거 의회에서 대중 매파로 활동했던 전력 때문에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역시 중국을 사실상의 적국(敵國)으로 규정한 지난 5월 ‘샹그릴라 대화’ 연설 이후 “백악관에서 우려를 표시해 이후 중국에 대해 거의 얘기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인사는 “트럼프 정부 초기 대통령 주변의 고위 인사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서한을 받을 수 있을까?’ ‘유엔 경로를 통해야 하나?’ 이런 식으로 요청이 있었다”며 “우리는 트럼프가 집권하지 않은 4년 동안에도 가끔 북한과 접촉을 시도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 (김정은과) 관여하려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가 북·중·러 같은 권위주의 국가와의 외교에 그토록 관심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확실히 답변하기 어렵다”면서도 “이 중 북한이 가장 까다로운 상대일 텐데, 대규모 부동산 개발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우리를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면 논의할 게 많고, 그렇지 않다면 관심 없다’는 북한의 메시지는 (북한 입장에서 보면) 현명한 태도였다”며 “중·러와 훨씬 더 가까워진 북한은 4년 전보다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고, 이 두 나라가 북한에 갖고 있는 불안감을 교묘하게 이용해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