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와 관련해 “전 세계를 인질로 잡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미국이 수입하는 중국 제품에 대한 대규모 관세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6년 만의 대면(對面) 회담을 갖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네 차례 고위급 협상 끝에 소강 상태였던 미·중 무역 전쟁이 재점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중 회담이 불발되면 APEC을 ‘외교 빅 이벤트’로 밀던 우리 정부의 구상도 차질을 빚게 된다.

트럼프는 이날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중국에서 매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매우 적대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미·중 회담을 앞둔 지난 9일 한층 강화된 희토류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이라고 해도 중국산 희토류가 0.1% 이상 포함되거나 중국 기술이 적용되면 수출 허가를 받도록 했다. 트럼프는 “이는 전례가 없는 일로 시장을 막아버릴 것”이라며 “세계 거의 모든 국가, 특히 중국 자체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이 엄청난 무역 적대 행위에 극도로 분노한 다른 국가에서 우리에게 연락이 왔다”며 “지난 6개월 동안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양호했기 때문에 이번 무역 관련 조치는 더욱 놀랍다”고 했다.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합의를 중재한 트럼프는 “3000년 혼란과 분쟁 끝에 중동에 평화가 찾아온 날”이라며 중국 조치의 타이밍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중국이 세계를 인질(captive)로 삼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은 중국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독점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들의 조치에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대응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결국 미국에는 매우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중은 지난 5월 첫 고위급 협상을 통해 상대국에 부과했던 고율(高率)의 관세를 각각 115%포인트씩 인하하기로 했고, 10월 트럼프와 시진핑의 최종 담판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트럼프는 특히 “2주 후 한국에서 열리는 APEC에서 시 주석과 만날 예정이었으나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며 6년 만의 미·중 대면 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중 회담은 이번 APEC의 최대 관심사인데, 최악의 경우 트럼프·시진핑의 방한(訪韓)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는 현재 한국에서 당일 또는 1박 일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날 트럼프의 발표를 놓고는 추후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특유의 압박 전술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는 1기 때인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도 이를 전격 취소한다고 발표했다가 이틀 만에 입장을 거둬들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