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밈'. 바이든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놓여야 할 자리에 오토펜이 서명하는 사진이 대신 붙어 있다. /트루스소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부동산 디벨로퍼 출신답게 재집권한 이후 백악관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뜯어고치고 있다. 대형 성조기를 걸 수 있는 깃대를 세웠고, 로즈가든에 흰색 석재로 덮인 광장을 만들어 이를 ‘로즈가든 클럽’으로 명명(命名)해 노란색 줄무늬 파라솔로 채웠다. 대형 연회를 할 수 있는 무도회장도 사비를 일부 털어 짓고 있다. 압권은 웨스트윙 한 편에 마련된 역대 대통령들 공식 초상화가 걸린 ‘대통령 명예의 거리’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다른 인물들과 달리 트럼프 직전까지 재임한 조 바이든만 사진이 아닌 다른 그림으로 표시돼 있다. 그 유명한 ‘오토펜(autopen)’이다.

트럼프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며 사진·동영상 등을 가장 먼저 올리는 마고 마틴 대통령 특보는 24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대통령 명예의 거리’를 촬영한 25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등 역대 대통령의 사진이 금색 테두리 액자에 들어가 있는데 바이든만 얼굴이 없고 그 대신 오토펜 그림이 들어가 있다. 오토펜은 로봇 팔에 볼펜을 끼운 기계로, 복제하고 싶은 서명을 한 번 저장해 두면 실제 필체와 똑같이 복제한다. 미 역대 대통령이 연하장 등 대량 문서를 처리할 때나 부득이하게 자리에 없을 때 사용해 왔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250달러(약 35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바이든이 재임 중 직접 서명하지 않고, 오토펜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지난 3월 바이든이 임기 막판에 아들 헌터를 비롯해 리즈 체니·애덤 킨징어 전 하원의원 등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인사들을 대거 사면한 것을 두고 “바이든은 직접 서명하지도 않았고 그것이 무슨 조치인지도 제대로 몰랐다”고 했다. 이런 의혹은 바이든 임기 내내 줄곧 그를 따라다닌 고령 리스크와도 관련이 있는데, 보수 진영에선 바이든이 임기 중 심각한 인지력 저하를 겪어 제대로 국정 수행을 하지 못해 오토펜이 사용됐다고 주장해왔다. 다만 바이든이 실제로 오토펜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고, 백악관 역시 이를 제시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3월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바이든의 초상화가 놓여야 할 자리에 오토펜이 서명하는 사진이 대신 붙어 있는 그림을 올린 적이 있다. 이는 트럼프를 추종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밈(meme)이 됐는데, 트럼프가 이를 실제로 백악관에 구현하자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매가 진영의 인플루언서인 베니 존슨은 “바이든의 초상화가 실제로 오토펜으로 돼 있다”며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백악관 역시 공식 계정에서 마틴이 올린 영상을 공유하며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을 연달아 사용했고, 트럼프가 오토펜을 빤히 바라보는 사진도 배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웨스트윙 한 편에 마련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실제 초상화가 아닌 '오토펜' 그림이 들어가 있다. /백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