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초대 주미 대사에 내정돼 임기 시작을 앞두고 있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과 이번에 가서 잠깐 봤지만 주미 대사관의 외교력이 작년 계엄 선포 이후 많이 무너졌다”며 “폐쇄적이고 엘리트 위주라는 (비판도) 맞는 부분이 있다. 가서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강 내정자는 24일 친여(親與) 성향 방송인인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MBC 방송에 출연해 “대사의 역할은 네트워킹을 통해 현장에 어떤 목소리가 있고 어떤 것이 걸림돌인지 잘 파악해 정상 외교를 보완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주미 대사는 지난 7월 초 정부가 특임 공관장 ‘2주 내 귀국’을 지시하면서 조현동 대사가 후임자가 오기도 전에 귀임해 3개월째 공석(空席)으로 있다.
진행자인 손씨는 이날 “주미 대사관이라면 누가 봐도 외교부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과연 거기에 걸맞은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미국 정부·의회에 대한 끊임없는 모니터링이 있어서 (그것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그 초기 단계 작업이 잘되고 있냐는 문제 제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 내정자는 공감을 표시하며 “미국에는 기가 막힌 얘기들을 하는 큰 목소리들이 있지 않냐”며 “거기에 대해 한국이 어떻다는 걸 제대로 알리는 공공 외교가 중요한데, 가서 봐야겠으나 전체적인 방향은 (인적 자원을) 키워야 한다는 건 맞는 말씀”이라고 했다.
이날 강 내정자가 언급한 ‘기가 막힌 큰 목소리’는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기조와 국내 정치적 상황, 특검의 수사 등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일부 인사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일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도 가까워 트럼프가 지난달 한미 회담 직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는 글을 올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특별 수행원으로 회담에 배석했던 강 내정자는 “기자들 앞 공개된 회담도 그렇고, 오찬에 들어가 비공개로 진행한 회담도 그렇고 내용이 아주 좋았고 트럼프도 굉장히 만족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1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참모진과 소통하기보다) 본인이 다 알아서 하시는 것 같다”며 “지도자가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강 내정자는 한미 회담의 공개되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소개했는데 트럼프가 ‘한국 여성 골퍼들은 왜 이렇게 골프를 잘하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연습도 연습이지만 양궁같이 무언가 타깃팅을 하는 걸 한국이 선천적으로 잘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북 회담 전망에 대해서는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만남을 분명히 원하시는 것은 맞다”며 “김정은이 지금까지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는 반응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강 내정자는 문재인 정부 때 외교 장관으로 있으면서 “코로나가 북한을 더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가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이를 ‘망언’으로 규정하며 “두고두고 기억하고 계산하겠다”고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강 내정자는 아그레망(Agrément·주재국 부임 동의)은 나왔지만 트럼프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공식 활동을 하기까지는 일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강 내정자가 회장으로 있는 뉴욕의 글로벌 비영리 단체 ‘아시아소사이어티’는 25일 “강 내정자가 주미 한국대사에 임명돼 10월 초부터 임기를 시작한다”며 “(강 내정자는)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국가 간 가교를 구축하고 더 큰 이해를 증진시키는 아시아소사이어티의 전통을 이어가는 데 강력한 리더였다”고 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는 “차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물색할 예정”이라고 했다. 케빈 러드 주미 호주 대사도 부임 전까지 아시아소사이어티 회장을 지냈는데, 공교롭게도 그 후임인 강 내정자 역시 주미 대사에 임명돼 두 사람이 워싱턴 DC에서 조우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