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ABC 방송의 심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멀. /AFP 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압박에 방송 제작이 중단돼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에 불을 붙인 ABC 방송의 간판 심야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가 23일 1주일 만에 다시 방영됐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평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주로 풍자해온 키멀은 이날 방청객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그는 “나와 타이레놀의 최고경영자(CEO) 중에 누가 더 기이한 48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며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는데, 이는 전날 트럼프가 특별한 근거 없이 “임산부는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태아 자폐와의 상관관계를 꼬집은 것으로 해석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ABC가 키멀을 복귀시켰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며 “저조한 시청률 속에서 썩어가도록 내버려 두자”고 했다.

키멀은 이날 “이 프로그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중요한 건 우리가 이런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젊은이의 살인 사건을 가볍게 여길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며 “일부 분들께서는 제 발언이 시의적절하지 않거나 불분명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키멀은 지난 15일 방송에서 찰리 커크 터닝포인트 USA 대표의 암살과 관련해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패거리가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말하고 트럼프를 ‘금붕어를 잃은 네 살 아이’에 빗댄 것이 논란이 됐다. 이후 연방통신위원회(FCC) 등이 방송 중단을 압박했고, ABC는 곧바로 무기한 제작 중단을 결정하며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미국 내에서 일었다. ABC 모회사인 디즈니는 22일 “키멀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끝에 프로그램 재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키멀은 디즈니의 중단 결정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권력자들을 풍자할 권리를 옹호하고 오늘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그리고 부당하게도 이번 일로 인해 (제작진들이) 위험에 처하게 됐다”며 “미 대통령은 나와 여기서 일하는 수백 명의 직원들이 해고되길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 지도자는 농담을 못 받아들이는 바람에 미국인들이 생계를 잃는 걸 기뻐한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는) 나를 취소(cancel)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수백만명이 이 토크쇼를 보도록 만들었다”며 “어쩌면 우리 모두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새로운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트럼프는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23일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의 '지미 키멀 라이브!' 제작 스튜디오에서 방송 재개를 환영하는 한 시민이 관련 피켓을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키멀의 방송이 재개됐지만, 미국 내 지역 방송 네트워크를 소유한 넥스타·싱클레어 등이 “모든 당사자가 정중하고 건설적인 대화 환경 조성에 전념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 방송 중단 결정을 유지할 것”이라 밝혀 이날 방송은 미국 내 많은 지역에서 송출되지는 않았다. 두 기업 모두 FCC 같은 규제 당국으로부터 확장 계획에 대한 승인, 주파수 사용권 허가 심사 등 각종 규제를 받기 때문에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 때문에 일부 네티즌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지역별로 키멀 쇼를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공유했다.

트럼프는 키멀의 복귀가 이뤄진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키멀의 시청자는 사라졌고 그에게 ‘재능’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며 “왜 그렇게 형편없고, 재미도 없고, 민주당에만 99% 긍정적인 ‘쓰레기’만 내보내며 방송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을 다시 원하는가”라고 했다. 트럼프는 키멀을 민주당 선거 컨트롤타워인 ‘전국위원회(DNC)의 앞잡이’라 표현하며 “이번 일로 ABC를 시험해 볼 생각이다” “저번에 소송을 제기했을 땐 그들이 나에게 1600만 달러(약 223억원)를 지급했는데 이번에는 더 큰 수익을 낼 것 같다”며 압박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