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뉴욕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 약 6년 만에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위해 연단에 섰다. 통상 이 자리는 미 대통령이 뉴욕에 결집한 전 세계 지도자들을 상대로 보편적 가치 수호 결의를 다지고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어젠다 해결 의지를 대내외에 드러내는 장소지만, 트럼프는 이날 유엔을 향해 “글로벌 분쟁 해결 능력이 없는 무능한 기관” “여러분들의 나라를 지옥으로 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외교에 있어서 유엔으로 대표되는 다자주의를 불신하고 양자(兩者) 간 ‘직거래’를 선호하는 트럼프의 평소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다만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서는 “때론 유엔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나 100% 지지한다”고 했다.

폴리티코는 이날 “유엔에 모인 외교관들과 세계 각국 정상들은 위기에 직면한 세계, 공격받는 제도에 대해 경고하고 있지만 오늘 아침 트럼프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며 “마치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집회에서 하는 유세 연설처럼 들렸다”고 했다. 트럼프는 약 1시간 연설 동안 유엔 총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어젠다인 지역 분쟁, 인권 침해, 기후 변화 위협 등을 싸잡아 비판했다. 특히 자신이 취임 후 많게는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며 “국가 지도자들과 직접 협상했지만 유엔으로부터 협상 타결을 돕겠다는 전화 한 통조차 받지 못했다. 유엔의 존재 목적이 뭐인가? 그들은 전혀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유엔이 해야 할 일을 내가 했다는 게 안타깝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유엔이 주도한 기후변화 대응, 탄소 저감(低減) 정책에 대해서도 “전 세계에 저질러진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했다. “1982년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기후변화가 2000년까지 전 세계적 재앙을 일으킬 것이라 말했고, 또 다른 유엔 관리는 1989년 10년 안에 세계 모든 나라가 온난화로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각국 정상을 향해 “이 ‘녹색 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의 나라는 실패할 것”이라 했다. 또 “탄소 발자국(온실가스 배출량)은 악의적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꾸며낸 사기”라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발전에 지나치게 집중한 결과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생산 시설이 붕괴했다”고 했다.

취임 후 불법 이민자 추방, 국경 통제 등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을 추구해온 트럼프는 “2024년 유엔은 약 62만4000명의 이주자가 미국으로 이동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3억7200만 달러의 현금 지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며 “불법 체류자들에게 음식, 숙소, 교통편과 직불카드를 제공했다. 유엔은 침략을 막아야 하는 곳이지, 그것을 만들어내거나 자금을 지원해선 안 된다”고 했다. 또 “불법 이민과 고비용의 이른바 그린 재생에너지가 자유로운 세계와 우리 지구의 많은 부분을 파괴하고 있다”며 반이민 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전임 오바마·바이든 정부를 비판하는 데 발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많은 주제에서 미국이 광범위한 글로벌 합의와 크게 동떨어져 있음을 분명히했다”고 전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왼쪽)과 마이크 왈츠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3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듣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이날 트럼프 연설에 앞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유엔의 무책임한 행동을 규탄하고 조직으로서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유용성을 찾도록 촉구하는 것”이라며 “유엔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반면, 돈을 많이 쓰는 데에는 꽤 능숙하다”고 했다. “일 년에 한 번 사람들이 모여 연설을 하고 편지·성명서를 작성하는 곳일 뿐 실질적인 중요한 행동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무책임한 조직이 됐다”고도 했다. 루비오는 이날 트럼프 연설 뒤엔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강력한 국경과, 에너지 우위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다”며 “모든 국가는 트럼프가 제시하는 자유 세계 모델에 맞춰 무분별한 이민 재앙, 가짜 에너지 재앙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