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오른쪽)이 과거 친동생 게리 러트닉과 촬영한 사진. 러트닉이 최고경영자(CEO)로 있던 투자 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에서 파트너로 근무하던 게리는 9·11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X(옛 트위터)

이슬람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하이재킹한 비행기 두 대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를 차례로 때려 2977명의 무고한 생명이 숨진,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꼽히는 9·11 테러가 11일로 24주기를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멜라니아 여사와 펜타곤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했고, 이후 뉴욕으로 이동해 뉴욕양키스의 메이저리그(MLB) 야구 경기도 관람할 예정이다. 이날 미 리더십의 많은 인사들이 각자 추모 메시지를 냈는데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이었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관세 전쟁’의 주무 장관으로 우리 국민들에도 잘 알려진 얼굴이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러트닉의 64년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9·11 테러일 것이다. 뉴욕주(州) 롱아일랜드 출신인 러트닉은 1983년 캔터 피츠제럴드에 입사해 29세 때인 1990년 초반 회장 겸 CEO에 올랐다. 커피 심부름부터 시작했지만 옵션 투자 등에 두각을 나타내며 고속 승진을 했다. 2001년 당시 이 회사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의 101~105층에 입주해 있었는데, 테러 공격으로 파트너였던 친동생 게리 러트닉을 비롯해 자신의 친구·동료 656명을 순식간에 잃었다. 러트닉도 그 희생자 중 한 명이 될 뻔했지만 이날이 마침 장남 카일의 유치원 첫 등원일이라 아들을 데려다주는 바람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11일 뉴욕에서 열린 9·11 테러 추모 행사에 참석해있다. 러트닉 오른쪽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다. /AFP 연합뉴스

러트닉은 이날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동생 게리와 찍은 사진을 올리며 “(아들의)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지만 받을 때마다 전화가 끊어졌다”며 “나중에야 그 전화가 게리가 했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우리 여동생과 통화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러트닉은 순식간에 직원의 3분의 1을 잃었지만 절치부심해 회사를 전 세계 1만3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으로 다시 성장시켰다. 회사 이름을 딴 구호 기금을 설립하고, 9·11 테러를 포함한 재난 피해자에게 3억50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하는 등 광범위한 자선 활동을 펼쳤는데 이 때문에 미국인들 사이에선 9·11 테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도 각인돼 있다.

러트닉은 지난 9·11 테러 20주년이었던 지난 2021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9·11 이전과 이후로 제 인생이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상처가 너무 생생해서 마치 어제 벌어진 일같이 느껴지기도 했다”며 “친구를 잃고, 부모를 잃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병원에서조차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한 인간의 삶이 산산조각 나는 문제였다”고 했다. 자신의 회사에 다니던 한 직원이 9·11 테러로 목숨을 잃었고, 그 아들이 훗날 입사한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했는데 “이게 내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나” “고통스러웠던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 중 하나였다”고 했다. 러트닉은 CEO로 재직하면서는 9·11 테러 추모일 때마다 뉴욕의 본사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직원들 모두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마움을 전했고, 유족들을 위한 사적인 추모식도 열었다고 한다. 러트닉은 이날 방송에서도 “이따 추모 행사에 잠시 들를 것”이라고 했다.

러트닉은 이날 “트럼프 정부의 상무장관으로 근무하면서 이 나라가 얼마나 아름답고 특별한지, 동시에 우리의 적(敵)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를 깨달았다”며 “기회가 있다면 9·11 테러를 기획한 괴물과 같은 사람들은 또 다시 비슷한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위대함은 우리의 정부와 군대, 긴급 구조대, 그리고 우리 국민이 이런 공포·도전·위협에 맞서는 방식에 있다”고 했다. 러트닉은 “오늘 우리는 24년 전 잃은 이들과 용감하게 나서서 타인을 구조한 구조대원들과 시민을 기린다”며 “이 기억을 하면서도 나는 매우 슬프지만 동시에 내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미국은 결코 악(惡)에 굴복하지 않는 나라”라고 했다.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최고경영자(CEO) 시절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오른쪽)과 장남 카일 러트닉. 이 사진은 2001년 9월 11일 당일 촬영된 것인데, 이날 러트닉은 아들의 유치원 등원 첫 날을 함께했고 그 덕에 9·11 테러로 인한 희생을 면할 수 있었다. /X(옛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