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1일 지난주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州)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을 단속해 한국인 300여 명을 구금했다 1주일 만에 석방된 사건 관련 “현대차 관련 근로자들이 잘못된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다”며 “회사가 나에게 연락해 올바른 비자 취득을 위해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외국의 대미(對美) 투자 기업이 미국에 생산 시설을 지을 때 자국 전문 인력이 파견을 와서 현장 안정화, 미국인 인력 교육 등을 할 수 있도록 비자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이날 “한미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 더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러트닉은 이날 공개된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 출연해 “이번 단속의 책임은 전적으로 현대차에 있다”며 “현대차가 근로자들을 관광 비자를 통해 입국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한국 측에 전화를 걸어 ‘제발 좀 그만하라’ ‘제대로 된 비자를 받아라’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연락하라’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전화하겠다’고 말을 했다”며 “적법한 비자를 취득할 수 있게 도와주겠지만 불법적인 방법은 쓰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요구한다”며 “이민을 원하거나 근로자를 데려오고 싶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규정을 회피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다만 러트닉의 이런 주장과 달리 이민 단속에서 체포·구금된 한국인 중 일부는 미 공장·법인 등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주재원 비자(L-1)를 들고 있었다. 또 단기 상용 비자(B-1)나 최대 90일까지 비자 신청을 면제해주는 전자여행허가제(ESTA)의 경우에도 계약서 등에 명시가 돼 있으면 해당 인력이 미국에 와서 관리·감독을 하고 일부 기자재를 설치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리게 될 경우 구금이 장기화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외교 당국은 ‘우선 귀국’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한미 간 협의를 진행했다. 악시오스는 “러트닉이 언급한 적법한 비자 취득은 말처럼 쉽지 않다”며 “외국인 전문직을 위한 H-1B 비자의 경우 할당된 정원보다 수십만 명 더 많은 지원자가 몰려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한다. 또 기업이 상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충분한 양의 적절한 비자를 얻을 수 있을지도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러트닉은 이번 단속이 대미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다른 외국 기업들의 미국 내 사업 확장을 막지 않을 것”이라며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비자 위반 상태로 체류 중인 사람들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현대차는 이번 사건에 대해 모든 벤더와 하청업체 등이 이민법·주(州)법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자체 조사를 시작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지난 10일 본지에 보낸 성명에서 “현대차가 모든 법률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해준 것에 감사하다”며 “우리는 이번 불행한 사건이 수십 년간 함께 구축해 온 상호 이익 파트너십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번 단속으로 빠져나간 인력을 어떻게 채워야할지 모색해야한다”며 “최소 2~3개월의 공기 지연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지 인력만으로 공사를 이어가기는 어렵다”며 “고용해야할 대부분의 인력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 있다”고 했다. 배터리 공장 건설에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고, 여기에 더해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기술·장비가 투입된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당분간 조지아 커머스에 위치한 SK온 공장에서 배터리를 공급받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건이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