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지난달 22일 백악관에서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을 방문 중인 조현 외교부 장관이 10일 워싱턴 DC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조지아주(州) 포크스턴에 구금된 한국인 300여 명 관련 “수갑 등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하게 미국을 출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통상 양자(兩者) 회담 후엔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도자료에 담는데 미국 측은 구금 사태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외교부는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언급을 생략했다. 미국 측이 이번 사태와 관련된 우리 요구에 긍정적으로 답해 한국인 구금자 귀국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지만, 트럼프·이재명 정부 들어 북핵이나 대만 문제 같은 주요 현안을 놓고는 한미 간 동상이몽이 감지된다.

외교부는 이날 조 장관이 “트럼프 정부의 미국 제조업 부흥 노력에 기여하고자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미국에 온 우리 근로자들이 연행되는 과정이 공개돼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같이 큰 상처와 충격을 받았다”며 “깊은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죄자가 아닌 만큼 수갑 등에 의한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하게 미국을 출국할 수 있도록 하고 향후 미국 재방문에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미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같이 요청했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한국행 대한항공 전세기를 띄울 예정이었지만 두어 시간 전에 ‘미국 측 사정’을 이유로 구금자들의 귀국이 지연됐다고 했다.

외교부는 조 장관의 이 같은 요청에 대해 루비오가 “동 사안에 대한 민감성을 이해하며 미 경제와 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트럼프가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화답했다”며 “빠른 후속 조치를 위해 협력해 나가고자 했다”고 했다. 반면 미국 측이 이번 회담 직후 발표한 토미 피곳 대변인 명의로 된 성명에서는 구금 사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국무부는 “인도·태평양에서의 억지력 강화, 공정한 무역 파트너십, 방위비 분담 확대 등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고만 전했다.

이날 회담에선 북한 핵·미사일 문제도 의제 중 하나로 논의가 됐는데 사후 표현 방식을 보면 한미 간 온도 차가 감지됐다. 국무부는 북핵이 ‘불법적인 프로그램(unlawful program)’이란 점을 강조하며 “불안정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의 의지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재집권 후 여러 차례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대북 대화 재개 의지를 밝혔지만, 백악관은 줄곧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문구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우리 외교부 발표를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 돼 있다. 페이스 메이커는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언급한 단어로, 정부는 대북 대화의 ‘입구’에 해당하는 과정에서 북핵·인권 등 북한이 불편해할 만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또 국무부가 이날 한미 동맹과 관련해 “인도·태평양 전역의 평화·안보·번영의 핵심축(linchpin)”이라 규정한 것과 달리 우리 보도자료에는 ‘인도·태평양(Indo Pacific)’이란 단어가 언급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1기 때 고(故)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차용한 이 개념에는 인·태 지역에서 미국과 동맹·파트너국이 협력해 중국 패권주의를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지난 7월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국무부가 “한미 모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국제 사회 안보·번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임을 강조했다”고 밝힌 반면, 우리 정부 발표에서는 이 문구가 빠졌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측은 미국 얘기를 하고, 한국은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닌 것”이라며 “동맹국이 다 완벽하게 의견 일치를 볼 수는 없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