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토안보부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ICE 홈페이지

미국 이민 당국의 조지아주(州)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단속 때 예상보다 많은 한국인이 구금된 것은, 이들 대부분이 공장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적법한 비자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일하려면 전문직 취업(H-1B)·비농업 단기 근로자(H-2B) 비자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비자는 개수가 제한적이고 발급에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수시로 인력 파견이 필요한 기업 입장에선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상당수 기업들은 단기 관광(90일 이내) 시 비자 신청을 면제해주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비이민 비자인 단기 상용(B-1) 비자 등을 ‘우회로’로 이용해왔다. 다만 ESTA와 B-1 비자 모두 원칙적으로 취업 활동은 금지되는데 이민 당국은 이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바이든 정부 때까지는 우리 기업의 폭증하는 대미(對美) 투자와 맞물려 이런 관행이 어느 정도 묵인됐지만, 반이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고 나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외교 소식통은 6일 “이번 단속 이전에도 대기업 직원들이 ESTA로 출장을 왔다가 입국이 거부된 사례가 꽤 있었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미국 현지에 진출을 했거나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기업인들은 “초기 기술 이전, 현장 안정화, 공기 단축 등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파견된 숙련된 인력이 어느 정도 일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기업의 생산 시설이 주로 대도시가 아닌 시골 지역에 있기 때문에 책임감 있게 오래 일할 현지 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애로가 크다고 한다. 한국은 최대 대미(對美) 투자국 중 하나이지만, 미국이 1년에 8만5000개를 발급하는 H-1B 비자에서 한국은 별도 쿼터 없이 2000명 내외가 승인받는 데 그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캐나다·멕시코(무제한), 싱가포르(5400명), 칠레(1400명), 호주(1만500명) 등 5국에 대해서는 국가별 연간 전문직 비자 발급 쿼터를 할당하고 있다.

그동안 재계에서 한국인에 대한 전문직 비자 쿼터 개설 요구가 끊이지 않았는데, 관련 법안이 2013년부터 미 의회 회기 때마다 발의됐지만 번번이 통과에 실패했다. 올해 7월에도 한국계인 영 김 공화당 하원 의원이 미국 정부가 전문 교육·기술을 보유한 한국 국적자에게 연간 최대 1만5000개의 전문직 취업비자(E-4)를 발급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소규모라 미 고용 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지만, 외국인들이 미국 내에서 일할 수 있게 비자를 주자는 것이라 미 의원들이 앞장서서 통과를 주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