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나이젤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왼쪽)가 3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X(옛 트위터)

“저는 트럼프 대통령과 매가 운동을 꾸준히 지지해 온 유일한 인물입니다. 이게 인기 없는 선택이었을 때도 제 생각이나 견해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어요. 나는 다음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는 정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나이젤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

이번 주 워싱턴 DC 정가의 최고 화제 중 하나는 영국의 강경 보수 성향 정당인 영국개혁당 당수인 나이절 패라지 대표의 미국 방문이다. 패라지는 3일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영국 내 표현의 자유가 탄압받고 있는 상황과 만연한 ‘캔슬 컬처’에 대해 증언했다. 영국 정치인이 미국 의회에서 자국 상황을 규탄하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된 것인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이 대단히 큰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주제다. 패라지가 만들었고 9월 개국 예정인 보수 성향 TV 채널 ‘GB 뉴스’의 워싱턴 DC 지국 출범 파티에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등 트럼프 정부 고위직들이 총출동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패라지는 1993년 출범한 영국 독립당 출신으로 1999년부터 다섯 차례 유럽의회 의원을 지냈다. 오랜 기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주장해왔는데, 2016년 ‘브렉시트’를 계기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다만 정치 프로토콜을 존중하지 않고 상대방을 무차별 조롱하는 스타일 때문에 비호감도도 상당한 편이다. 패라지는 자신의 정치 역정에서 불법 이민 추방, 정치적 올바름(PC) 타파 등을 강하게 주장했는데 이를 계기로 미국의 보수 진영과 가까워졌다. 미국보수연합(ACU)이 주최하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의 단골 손님인데, ‘정치 수퍼볼’이라 불리는 CPAC은 변방의 인사였던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거듭나게 된 무대다. 패라지는 오랜 기간 트럼프와 친분을 유지해왔다. 반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번 방문에 대해 “비애국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이젤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가 3일 미국 의회에 출석해 영국 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은 현재 하원 총 650석 중 5석만 점유하고 있지만, 지난 5월 유고브 여론조사를 보면 29%의 지지율로 1위를 기록하며 집권 노동당(22%)을 7%포인트 차로 앞섰다. 같은 달 치러진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노동당 텃밭을 가져가는 등 이변을 일으켰는데, 차기 총선에서 다수 의석 확보는 물론 집권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패라지는 3일 워싱턴 DC의 고급 사교 클럽인 ‘네즈’에서 열린 행사에서 “2016년 6월 브렉시트 결과가 그해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그 영향이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여러분이 지난해 대선에서 이룬 성공이 영국으로 돌아와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는 러트닉과 레빗,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로리 차베스-데레머 노동부 장관, 데이브 매코믹 공화당 상원의원,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 등 매가 인사들이 총출동해 개국을 축하했다.

패라지는 트럼프와도 오벌 오피스에서 만남을 가졌는데, GB 뉴스 진행자인 베브 터너는 X(옛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를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터너는 “트럼프는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영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았다”며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패라지는 GB 뉴스로부터 연간 150만 달러(약 20억9200만원)를 받고 저녁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내가 다우닝가 10번지(총리 관저)에 들어가면 이 쇼를 진행하기 까다로워질 수 있겠지만 나는 과거에도 관례를 따르지 않았으니 그냥 계속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패라지는 의회 증언에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자유로운 삶의 절대적인 토대로 우리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렀다”며 “최근 영국에선 어떤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발언을 문제 삼고 처벌을 하는 ‘캔슬 컬처’가 만연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우리가 언제 북한이 됐는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