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자국 기업에 대한 디지털 규제를 경고하며 대규모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이는 유럽이 아닌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폴리티코가 3일 백악관의 디지털 무역 정책에 정통한 인사 네 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미국 기술 기업을 규제하는 국가들에 ‘상당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해 주요 당국이 긴장하고 있는데, 이 게시물이 한국의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동향을 보고받은 뒤 올라왔다는 것이다. 디지털 무역 장벽 해제는 한미 무역 협상에서도 주요한 현안으로 논의됐는데, 한미가 대표적으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분야다.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게시물이 올라온 당일 대통령과 통화한 한 인사를 인용해 “트럼프의 게시물은 한국, 그리고 디지털 무역에 관한 새 규정을 검토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 유럽연합(EU)의 접근법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성 발포였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엄포는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나온 것이다. EU는 디지털시장법(DMA) 등을 통해 디지털 시장에서의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애플·메타 같은 미국 빅테크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돼 미국 측 반발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세 명의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다른 무역 파트너들에 디지털 규제 추진 중단을 압박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한국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미 의회가 공개적으로 반대한 ‘온라인 플랫폼 독점 규제법’ 입법 추진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최근 “국적에 따른 차별 없이 같은 법적 원칙과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며 “미국과 소통을 강화해 국익 차원에서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두고 친(親)트럼프 인사인 빌 해거티 상원의원 등이 “중국의 기술 기업에만 유리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역시 트럼프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찰리 커크 터닝포인트 USA 대표도 X(옛 트위터)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산업을 규제로 겨냥하는 반면 중국 기업들에는 면죄부를 주고 있다”며 “우리 기업은 처벌받는 데 중국에 더 이상 면죄부를 두어서는 안 된다. 트럼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대형 로펌 변호사 출신인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역시 이 법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이 막대한 무역 적자를 감수해가며 한국과의 경제 관계를 확대했는데, 그 반대급부로 받아드는 것이 미국 회사에 대한 가혹한 차별이면 이건 끔찍한 그림”이라고 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한국에 디지털 무역 제한 포기를 약속하는 내용이 포함된 공동 성명 조인을 압박했으나 한국이 해당 초안(草案)을 거부했다”며 “서울(한국)은 트럼프 정부의 기대를 반영해 접근 방식을 조정하겠으나 어떠한 형태로든 디지털 규제를 추진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폴리티코는 대통령,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과 자주 만난다는 한 인사를 인용해 “트럼프가 국내에서 아마존·구글 등 미국 빅테크를 겨냥하고 싶다면 그건 그의 권한이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며 “이는 중국 정부에 대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 4월부터 계속된 한미 무역 협상 과정에서 온플법 폐지, 고정밀 지도 반출 같은 업계 민원을 쏟아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