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이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백악관에 도착한 순간, 미군의 F-16, F-35 전투기들이 백악관 상공을 비행했다. F-35 4대에 이어 등장한 F-16 4대는 특별히 1대가 고도를 높이며 편대를 이탈하는 ‘미싱 맨(missing man)’ 대형으로 비행했다. 미싱 맨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엔 지난달 28일 에어쇼 연습 비행 도중 전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폴란드 공군의 F-16 조종사 마치에이 크라코비안 소령을 추모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트럼프가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 맞춰 환영의 뜻으로 전투기까지 띄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은 폴란드 대통령을 그만큼 각별하게 예우한 것이다. 트럼프는 나브로츠키와 함께 비행을 지켜보며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후 회담과 오찬이 이어졌다.
이날의 특별한 환대는 나브로츠키가 트럼프와 ‘코드’가 맞는 정치인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마추어 복서이자 민족주의 성향 역사학자 출신인 나브로츠키는 지난 6월 대선에서 당선돼 지난달 6일 취임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 지원 축소, 불법 이민자 추방, 유럽 난민협정 탈퇴 등 그가 내세우는 정책은 트럼프의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일맥상통한다고 평가받는다.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와의 안보 협력 등 친미(親美) 정책을 공약했고, 5월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 기도의 날’ 행사에 직접 찾아와 트럼프와 함께 사진을 찍고 이를 선거운동에 대대적으로 활용했다. 트럼프 역시 선거 직전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을 폴란드로 보내 사실상의 지지 연설을 하도록 했다.
트럼프는 이날 ‘미군이 폴란드에 남느냐’는 질문에 “폴란드가 원하면 더 많은 군인을 두겠다”며 “우리는 폴란드와 정말 많이 동조하고 있다. 매우 특별한 관계”라고 했다. 폴란드에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당시 처음 미군이 배치됐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 차례 증강돼 현재 1만명 안팎이 주둔하고 있다. 해외 주둔 미군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트럼프가 추가 배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트럼프는 폴란드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12%를 국방비로 지출했고 올해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4.7%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매우 좋은 일”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폴란드에서 군인을 없앤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결코 없지만,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이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미 국방부는 중국 견제 등을 목표로 해외 주둔 미군의 배치를 조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런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주한 미군 감축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걸 지금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주한 미군 기지의 부지 소유권을 갖고 싶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