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에 대해 한미 양측에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만, 이번 회담에서 관례와 다르게 공동성명이나 공동선언문이 발표되지 않은 점은 한계로 꼽힌다. 구속력 있는 준거가 없어 트럼프 한마디나 소셜미디어 포스트에 따라 언제든 불확실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체결한 한미 무역 합의 역시 유럽연합(EU)·일본 등과 달리 ‘팩트 시트’ 같은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25일 정상회담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한미 공동 문건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합의문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얘기가 잘됐다”고 했다. 하지만 전직 외교관은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의견 일치를 본 내용을 담는 게 공동성명, 공동선언 같은 문건”이라며 “얘기가 잘돼 합의문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3일 한일 정상회담 후에는 대통령실은 한일이 17년 만에 공동 언론 발표문을 낸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했었다.
트럼프는 재집권 이후 주요국 정상들과 양자(兩者) 회담을 가진 뒤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올해 2월 이시바 총리와 회담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는 미·일 동맹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보·번영을 위한 주춧돌(cornerstone)’로 표현하며 군사·우주·경제·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명시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도 우려를 표시하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한다”고 했다. 미·일 성명에는 “트럼프가 이시바의 방일 공식 초청을 받아들였다”는 내용도 있다.
트럼프는 1주일 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가진 회담에서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인도 간 21세기를 위한 군사 협력 기회 촉진, 가속화된 상업 및 기술 협력(COMPACT)’이란 이름 아래 총 33개의 항목에 걸쳐 협력 사항을 깨알같이 명기했다. 트럼프는 4월 17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만났을 때도 공동성명을 통해 “안보·경제·기술 분야 전반에서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증진하고 미·이탈리아 전략 동맹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목표 달성 기여를 위한 역량 강화 원칙 등을 언급했다. 역시 이 성명에도 “트럼프가 멜로니의 초청을 수락해 가까운 시일 내에 이탈리아를 공식 방문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한미 정상이 첫 양자 회담을 한 뒤 공동 문건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양국 간 과거 사례와 비교해도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5월 공동 성명을 통해 한미 동맹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 축(linchpin)’으로 명명했고 한반도를 넘어선 이른바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 도약을 위한 여러 과제를 망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트럼프 1기 때 첫 한미 회담에서 ‘북한 정책에 대한 긴밀한 공조 지속’ 등 6개 항목이 포함된 한미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문 대통령이 2021년 5월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과 첫 회담을 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5월 첫 방미(訪美)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한미 정상 간에 구속력 있는 결과 문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3500억달러 대미(對美) 투자, 쌀·소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시장 개방 여부 등을 놓고 불확실성은 계속 남아있을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반도체·의약품 등과 관련해 “품목별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MFN)를 약속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국 측이 이를 공신력 있는 문서로 명시한 것은 없다. 또 3500억달러 투자 펀드의 성격과 구성 같은 후속 조치를 놓고도 한미 간에 인식이 다른데 이번 회담을 앞두고도 여기에 대한 이견 차가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