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여러 차례 북한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대북 대화 재개 메시지를 내고 있는 가운데, 역시 같은 외교·안보 기조를 갖고 있는 이재명 정부도 여기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4일 미·북 대화 관련 “트럼프 리더십으로 뭔가 될 것을 기대한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대북 대화 재개를 위해 그 ‘입구’에 해당하는 과정에서 북한 인권, 핵·미사일같이 북한이 불편해할 만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외교·안보 기조를 갖고 있다. 이런 선상에서 대북 방송 송출을 중단하고 확성기를 철거했으며, 통일부는 2018년 이후 매년 제작한 북한 인권 보고서 발간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최고 지도자가 아무리 김정은에게 친서(親書)를 보내고 친분을 과시해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관한 문제인 북한 인권을 놓고는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 12일 국무부가 발간한 국가별 연례 인권 보고서다. 총 25페이지 분량으로 임의·불법 살인, 고문, 체포·구금, 표현·종교의 자유 제한, 인신 매매, 아동 노동 등 북한 내 인권 침해 사례를 집대성했다. 국무부는 “한 해 동안 북한 내 인권 상황에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고, 북한이 인권 침해를 저지른 관료를 처벌하거나 신뢰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며 “처형과 신체적 학대, 강제 실종, 집단 처벌 같은 폭력·강압을 통해 국가 통제를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분량이 지난해 53페이지에서 절반 이상 줄은 것을 부각했지만, 국무부는 추가 메시지를 통해 언론에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 중 하나로 체계적인 인권 침해와 학대에 관한 보고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강력한 범정부 대응을 조율하고, 북한 내 인권 존중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기조는 비단 행정부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인권 보고서가 공개된 같은 날 의회 내 자문 기구인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가 재중(在中) 탈북민의 인권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2000년 출범한 CECC의 공화·민주당 위원들과 정부 관료들이 지난 2년 넘게 머리를 맞댄 초당파적인 결과물인데, 이를 위해 의회 청문회를 열어 공론화를 하고 지난해 1월에는 ‘현지 조사’를 위해 한국에 파견단도 보내 자료를 수집했다. 미 의회 발간 보고서로는 드물게 ‘백성이 귀하고, 사직(국가)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중국 유학자 맹자(孟子)의 경구까지 인용해가며 강제 북송(北送), 여성 인신 매매, 강제 노동과 노동자 착취 등을 지적했다. “북한 난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중국 공산당(PRC)의 행보가 맹자의 이상과 정면으로 대립한다”며 “중국은 ‘상당한 영향력’을 활용해 북한이 잔혹한 행위를 중단하도록 압박하고, 더 나은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이 지난 7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반면 한국은 새 정부 출범 후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와 접하는 ‘창구’ 역할을 한 대북 방송 송출을 중단했고, 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도 모두 철거했다. 이후 군 당국이 “북한이 확성기를 철거하는 활동이 식별됐다”고 했는데, 김여정이 곧바로 담화를 내고 “우리는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를 철거한 적이 없고 철거할 의향도 없다”고 했다. 국방백서가 북한을 주적(主敵)이라 명시한 상황에서 그 스피커 역할을 해야 할 군 인사가 나서서 “(북한의 확성기 40대 중) 1대는 여전히 철거 상태”(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라며 북한의 ‘선의 의지’를 부각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 국무부가 언론 보도, 시민단체·싱크탱크 활동 등을 토대로 매년 북한 인권 보고서를 업데이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통일부는 ‘추가 내용이 별로 없다’며 발간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연말 유엔 총회에서 한국이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때는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의식해 공동 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비판이 적지 않았다.

워싱턴 DC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본지에 북한이 불편해할 만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 유화 행보를 놓고 “북한 주민들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들을 버리고 있다”(올리비아 이노스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 “협상을 위해 대화 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스스로 레버리지를 내려놓고 있다”(브루스 클링너 맨스필드재단 시니어 펠로)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현실을 무시한 채 북한의 ‘선의’를 무리하게 부각하면 한미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워싱턴 DC에 선전했지만 이는 상당 부분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과장한 것이었고, 결국 미·북은 두 차례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결렬됐다. 당시 여기에 관여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은 후에 회고록 등을 통해 ‘중재자’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일관된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특히 펜스는 “문 대통령이 나와 김여정 간 만남을 강요할 것이 뻔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했다”고도 썼다. 트럼프는 퇴임 후인 2021년 4월 “문 대통령은 지도자, 협상가로서 약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알고 좋아한 북한의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북한 김여정. /뉴스1·조선중앙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