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 백악관이 위치한 수도 워싱턴 DC의 치안 상황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연방 정부가 직접 치안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1790년 미국의 수도로 설립된 워싱턴 DC는 주(state)의 지위를 부여받지는 못했지만 광범위한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고 대통령 선거에도 세 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백악관에서 피트 헤그세스(왼쪽) 국방장관과 팸 본디(오른쪽) 법무장관 등과 함께 워싱턴 DC 치안 정책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는 11일 백악관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팸 본디 법무장관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에 따라 워싱턴 DC 자치법 740조를 공식 발동한다”고 발표하고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연방 정부가 워싱턴 DC 경찰국을 직접 통제하에 두고 우선 800명 규모의 주 방위군을 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워싱턴 DC 자치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비상 성격의 특별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워싱턴 DC 경찰을 48시간 동안 통제할 수 있고, 연방 의회 승인을 통해 3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 같은 조치가 “법과 질서·공공 안전을 다시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늘은 워싱턴 DC 해방의 날”이라고 했다. 이어 “워싱턴 DC는 폭력적인 갱단, 피에 굶주린 범죄자, 마약에 취한 미치광이들과 노숙자들로 가득 찼다”며 “우리는 공원에서 노숙자들의 야영지를 철거할 것”이라고 했다. 헤그세스는 “수주 안에 주 방위군이 거리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X에 ‘2024년 인구 10만명당 살인 범죄’라는 자료를 올렸는데, 해당 자료를 보면 워싱턴 DC 수치(27.54명)는 치안이 좋지 않기로 알려진 콜롬비아 보고타(15.1명)와 멕시코 멕시코시티(10.6명)보다 높다.

트럼프가 경찰 통제와 군대 투입이라는 초강수를 둔 배경에는 지난 3일 국무부와 정부효율부에서 일한 스무 살의 정보 전문가 에드워드 코리스틴이 청소년 10여 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 5일 폭행당한 코리스틴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내 권한을 행사해 도시를 연방화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며 개입 의사를 내비쳤다.

트럼프의 이례적 강경 조치에 대해 “정치적 노림수”라는 비판도 나온다. 워싱턴 DC는 뉴욕·로스앤젤레스·시카고 등과 함께 민주당이 초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백악관 주인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오가며 바뀌었지만, 워싱턴 DC 주민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늘 압도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민주당이 장악한 도시의 위험한 치안 상황’을 부각시키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를 비난하고 나섰다. 크리스 밴 홀런 상원의원은 “트럼프는 미국 수도에서 독재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했고,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 DC 시장은 경찰 통제에 대해 “불안하고 전례가 없다. 워싱턴 DC의 범죄율이 30년 사이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며 반발했다. 반면 워싱턴 DC 경찰노조는 “범죄는 통제 불능이고 우리 경찰관들은 한계를 넘어 부하가 걸려있다”며 지지 성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