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테라USD’ 발행과 관련해 사기 등의 혐의로 미국에서 형사 재판에 넘겨진 권도형 테라폼랩스 설립자가 11일 입장을 바꿔 유죄를 인정하고 최고 형량을 대폭 낮추는 데 합의했다. 지난 2023년 증권 사기 등 8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권씨는 최대 130년형에 처할 수 있었지만 이번 합의로 형량이 대폭 감형될 것으로 보인다. 미 검찰은 추가 기소 없이 권씨에게 최대 12년형을 구형하기로 했다. 권씨가 미국에서 일정 기간 형기(刑期)를 채운 뒤 한국으로 송환될 가능성도 있다.
권씨는 11일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에서 열린 심리에 출석해 사기 공모,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혐의 등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형량을 경감 또는 조정할 수 있게 한 미국의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제도에 따라 검찰은 권씨를 상대로 1900만 달러(약 256억원)와 그 외 다른 일부 재산을 환수하기로 했다. 이날 권씨가 유죄를 인정한 사기 공모(5년),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20년) 죄의 합산 최대 형량은 총 25년형이다. 검찰은 추가 기소 없이 최대 12년 형을 구형하기로 했다.
권씨는 미결수임을 나타내는 노란색 반소매 수의를 입고 양손에 수갑, 몸에는 포승줄이 묶인 채 법정에 나타났다. 담당 판사인 폴 엥겔마이어 연방판사가 합의 과정에서 강압이 있었는지, 유죄 인정 결과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는지 등을 권씨 등에 물었고 권씨는 이를 잘 알고 있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그는 법정 진술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의로 사기를 저지르기로 합의했고, 실제로 내 회사인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암호화폐 구매자들을 속였다”며 “내 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 나는 내 행위에 완전한 책임을 진다”고 했다. 권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12월 11일 열릴 예정이다. 최종 형량은 판사 재량이기 때문에 검찰 구형량보다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권씨가 최종 형량의 절반을 복역하고 플리 바겐 조건을 준수할 경우 권씨가 ‘국제수감자 이송’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법무부가 이를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권씨가 한국행을 신청할 경우 나머지 형기 절반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권씨는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뒤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의 송환을 주장했고, 법적 쟁송을 벌이다 결국 미국으로 송환된 바 있다. 현재 한국에서도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이 돼 있는 상태다. 이번 재판과는 별개로 권씨와 테라폼랩스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44억7000만 달러(약 6조2000억원) 규모의 환수금 빛 벌금 납부에 합의한 바 있다. 권씨가 유죄 인정으로 입장을 바꾼 것을 놓고는 트럼프 정부의 친(親)가상화폐 기조 속 사면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