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 대사를 포함한 특임 공관장 일괄 귀국 지시를 내리면서 혼란의 국제 정세 속 재외공관 30곳이 공석(空席)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정부 고위 관계자는 31일 워싱턴 DC의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한국은 지난번 계엄으로 인해 비상 상황이 수개월 간 지속됐다”며 “그게 지금까지 여진이 남아있는 것이고 공관장이 공석으로 된 곳이 있는 것도 현실이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 취임 후 외교부는 지난달 말 조현동 주미 대사, 박철희 주일 대사,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 황준국 주유엔 대사 등에 ‘2주 내 귀국’을 지시했다. 일부는 7월 14일로 귀국 시점을 못 박았는데 이 과정에서 직업 외교관 출신이거나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옅은 이들도 교체 대상에 올라 대거 귀국했다. 일부 대사는 ‘양자(兩者) 관계의 연속성’과 관세 협의 등을 이유로 후임자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남아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정권이 바뀌면 신임 대통령이 전(前) 정권이 임명한 특임 공관장 교체를 위해 후임자 아그레망을 신청한 뒤 순차적으로 교차해왔다. 다만 정권 교체기에도 4강 대사가 한꺼번에 동시 공석인 경우는 없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상황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며 “대사 대리 체제로 일단 꾸려가면서 정상화를 조속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한미 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주미 대사의 경우 대통령이 임명해도 신임장을 받기까지 길게는 2개월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주한 미군 역할 재조정, 한국의 방위 부담 확대 등을 포괄하는 ‘동맹 현대화 협의’가 시작된 가운데, 최전방에서 뛰어야 할 대사가 없는 것이다. 대사가 공석인 경우 빈 협약에 따라 공사나 차석 대사가 대리로 대행하게 된다. 하지만 주재국 최고위급 인사 접촉, 중요 정보 수집, 고위급 전략·정책 협의 같은 대사의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없어 외교 공백이 불가피하다. 공사는 원천적으로 대사와 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출신인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국익을 위해 기획재정부·산업부·외교부 장관 임명에 협조했는데, 이재명 정부는 협상 기간 중 미국 등 주요국 대사를 일괄 급거 귀국시키고, 후임자도 없이 비워 외교 공백을 초래했다”며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라는 슬로건을 무색케 하는 조치다. 주재국 고위층과 접촉하며 파악할 대사가 없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와의 협상 상황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겠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