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가면을 쓰고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브라질에 이어 콜롬비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문제 삼으며 “정치적 박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내정간섭이라는 지적에도 좌파 정권이 집권한 나라의 우파 정치인에 대한 수사·재판을 ‘정권의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020년 미 대선에서 패배한 뒤 각종 수사를 받은 경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리스토퍼 랜다우 국무부 부장관은 29일 자신의 X에 “오늘날 우려스러운 경향 중 하나는 정적(政敵)에 대한 사법 시스템의 무기화”라며 “정치적 차이는 투표함에서 해결해야지 법정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콜롬비아는 많은 판사가 목숨을 바쳐 이룬 사법 독립의 전통을 갖고 있지만, 어제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에 대한 판결로 그 전통은 더럽혀졌다”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우리베 전 콜롬비아 대통령은 지난 28일 콜롬비아 보고타 형사법원에서 사법 방해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형량은 7.5~12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사건은 2012년 좌파 정당 소속 이반 세페다 의원이 “우리베가 재임 시절 우익 민병대를 창설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등 좌익 반군에 맞선 준 군사 조직이었던 우익 민병대는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고 마약 밀매에 관여해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베는 “세페다 의원이 나를 모함하려고 수감 중인 전 민병대원을 매수해 증언을 조작했다”며 고소했고, 고위 공직자 조사권을 가진 콜롬비아 대법원이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역으로 우리베를 수사하라는 명령을 검찰에 내렸다. 우리베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번복시키려고 증인을 매수했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구스타보 페트로 현 대통령이 좌파 게릴라 무장 조직원 출신으로, 우리베와 정적 관계에 있다는 점 때문에 현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콜롬비아 국민들은 좌우로 갈렸고, 우리베에 대한 판결이 ‘정치 보복’이라며 규탄하는 시위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베는 2002~2010년 대통령을 지내며 미국과 협력을 강화했다. 트럼프와는 지난 2017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따로 만남을 가졌고, 2020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다. 우리베는 마코 루비오 국무 장관과도 가까운 사이다. 루비오는 이번 판결에 대해 “우리베의 유일한 죄는 조국을 위해 쉬지 않고 싸우고 방어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기소를 문제 삼으며, 브라질에 50%의 관세 폭탄 부과를 예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트럼프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현 대통령을 수신자로 한 서한에서 “마녀사냥을 즉각 멈추라”고 했다. 이달 초 소셜미디어에는 “브라질이 전 대통령을 대하는 방식은 국제적 수치”라고도 했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지지자들을 선동해 의회 폭동을 일으키는 등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우리베와 보우소나루는 모두 친미 성향의 우파 정치인이면서 트럼프와 관계가 돈독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럼프 정부는 콜롬비아에 대해서도 우리베 판결에 대한 불만 표시로 대외 원조를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이번 판결을 ‘사법 포획’으로 규정하며 이를 검토하고 나섰다. 반면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국가 주권 침해라 반발하며 “콜롬비아 법원과 판사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