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강윤정씨가 27일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열린 6·25전쟁 정전협정 72주년 기념식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그리고 나서 영웅이 따라올 거예요 / 버틸 수 있는 힘과 함께 말이죠 / 당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 희망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 때 / 당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마음을 굳게 먹어요….”

27일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열린 6·25 전쟁 정전협정 72주년 기념식. 더그 콜린스 국가보훈부 장관, 존 틸럴리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이사장 등 한미 2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의 말미에 소프라노 강윤정(27)씨가 무대 앞으로 나와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Hero)’를 열창했다. 이경임 디자이너가 제작한 한복풍의 드레스를 입은 강씨가 “혹시 지금 비가 오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로 이날 워싱턴 DC 날씨는 온도가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뜨거웠는데,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노래를 한 곡 더 불렀다. 98년생 소프라노의 열창에 참전용사는 물론 콜린스·틸럴리 등이 강씨에게 다가와 “완벽한 무대였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선화예중·고,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한 강씨는 ‘참전 용사 앞에서 노래하는 소프라노’다. 지난 3월 재단이 LIG 후원으로 워싱턴 DC에서 주최한 ‘참전 용사 후원의 밤’ 행사 당시 강씨는 미국인들에게도 친숙한 ‘문 리버’ 같은 노래 외에 미국 국가(國歌) ‘별이 빛나는 깃발’, 민요 아리랑을 재해석한 ‘신(新)아리랑’을 부른 것이 큰 화제가 됐다. 당시 강씨의 무대를 본 6·25 참전 용사 래리 키나드(97)씨는 기자에게 “정말로 아름다운 무대” “눈물이 날 것 같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강씨가 참전 용사들 앞에서 노래를 하게 된 건 래리 핸셸 재단 부회장이 유명 음악감독 최정윤씨의 소개로 강씨가 노래하는 영상을 접하고 나서다. 행사까지 열흘 남은 상황에서 섭외가 촉박하게 이뤄졌는데, “우리나라를 위해 봉사해주신 분들을 위해 나도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소프라노 강윤정씨가 27일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에서 열린 6·25전쟁 정전협정 72주년 기념식에서 무대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강씨는 이날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예전에 한 방송에서 일부 초등학생이 6·25 전쟁을 ‘육점이오’라고 읽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분들의 희생이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공부하고 기억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유엔 장병들은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희생해 먼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달려왔다. 그 희생 덕분에 지금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수 있었다”며 “이 전쟁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다양한 교훈을 얻고 미래에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강씨는 이날 무대에서 노래하기에 앞서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한다”는 뜻을 전했다.

강씨는 어릴 적 뮤지컬 ‘명성황후’의 아역 배우로 2~3년 동안 활동했는데, 키가 177cm까지 너무 커지는 바람에 성악으로 진로를 틀었다고 한다. 이미 한국에서는 나름 유명 인사가 됐는데 지난 2021년 3월 엠넷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8’에 ‘한양대 음대 여신’으로 출연한 것이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성악과 국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무대를 선보였는데, 유튜브 조회 수가 300만회가 넘는다. 이후로도 ‘아트 싱어’ 걸스 온 파이어'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도전했다. 강씨는 “누군가 나의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라며 “단순히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여러 장르를 통합하는 예술가가 되어 더 많은 관객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고 싶다”고 했다. 또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쉽지 않은 어려운 분들이 음악으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소프라노 강윤정씨가 지난 2021년 엠넷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8'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엠넷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