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8월 1일)를 약 2주 앞둔 16일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한국이 미국과의 협상에 집중하려면 국내 이해관계자 간 정책 조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비관세 장벽 해제를 강하게 요구함에 따라 한국 정부는 쌀·소고기 등 농산물 시장 일부 개방을 검토하고 있는데, 대통령실이 나서서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커틀러는 이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온라인 대담에서 “지금 시간은 한국에 유리하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약 20년 전 USTR 부대표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담당했던 그는 “당시 한국 협상팀을 이끌었던 외교통상부보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율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농림축산식품부 같은 부처들은 산업부가 원하는 대로 그냥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5일 농산물 개방 가능성을 시사한 뒤 농축산업계와 농식품부는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커틀러는 “한국 협상팀이 워싱턴 DC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초기여서 본국에서 할 일도 많을 것”이라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청와대(대통령실)의 감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후보자, 김정관 산업부 장관 후보자가 취임하는 대로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지만 커틀러는 “사공이 너무 많으면 중지를 모으기가 힘들어진다”며 협상 창구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미 양국이 새 관세율에 합의하고, 한국이 ‘선수금’ 성격으로 일부 비관세 장벽을 먼저 해소하고 대미 투자와 미국산 제품 구매를 약속하면 “8월 1일 전에 큰 틀의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커틀러는 “무역 협상 타결을 위해선 한미 정상 간 대화가 중요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성격을 고려하면 실무 단계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트럼프가 새로운 요구를 했을 때 한국 지도자가 그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거나 반박할 의지가 없는 경우 한국은 국익에 반하는 합의를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