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뉴저지주(州)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을 찾아 첼시와 파리 생제르맹(PSG)이 격돌한 클럽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했다. 이날은 트럼프가 지난해 펜실베이니아주 대선 유세 중 총격을 당해 구사일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인데, 미국과 캐나다·멕시코에서 열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띄우기 위한 성격도 있었다. 꼭 1년 뒤 트럼프가 찾은 이 경기장에서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축구계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밀착 수행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는 이날 멜라니아 여사를 비롯해 팸 본디 법무장관, 숀 더피 교통장관,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 등 내각 인사들을 대거 대동했다. 미 프로미식축구(NFL) 리그 전설의 쿼터백인 톰 브래디, 폭스뉴스 등을 소유한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등의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눈길을 끈 것은 VIP 스위트룸에서 90분 경기 내내 웃는 얼굴로 트럼프 옆자리를 지킨 인판티노 회장인데, 그는 내년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트럼프와의 우호적 관계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2월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월드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트럼프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며 “트럼프의 지지야말로 2026 월드컵 성공의 핵심 요소”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취임 후 미국은 공동 개최국이자 이웃 국가인 캐나다·멕시코와 관세, 불법 이민 등을 이유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인판티노는 올해 1월 20일 트럼프의 취임식에 초청받자 이를 ‘엄청난 영광’이라 표현하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또 3월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주재한 ‘월드컵 준비 태스크포스(TF)’ 회의에 참석해서는 역시 트럼프를 칭찬하며 “같이 지구상에서 최고의 쇼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인판티노는 트럼프 재집권 후 최소 두 차례 백악관을 찾아 대통령과 회동했고, 지난 5월 중동 순방 때도 따로 회담을 했는데 당시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한 투자 포럼에서 “잘했어 지아니”라고 말하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특히 이달 초 FIFA가 뉴욕 트럼프타워에 사무실을 개설해 트럼프와의 ‘신(新)밀월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인판티노는 트럼프를 “축구의 큰 팬”이라 소개하며 가문의 부동산 사업을 이끌고 있는 차남 에릭 트럼프의 지원에 대한 고마움도 표시했다.
인판티노는 1970년생으로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 등을 구사하는데 레바논 출신 배우자를 둔 덕분에 아랍어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스위스의 한 스포츠 연구 기관에서 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해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의 오른팔로 거듭났다. 그러던 중 2015년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로 장기 집권한 제프 블래터 당시 FIFA 회장, 그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됐던 플라티니가 줄줄이 축출되면서 “스트라이커가 빈 골문을 발견한 것과 같은 기회”(이코노미스트)를 잡아 축구계를 이끌게 됐다. 인판티노는 재임 중 월드컵의 수익성 개선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2034년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등 이른바 ‘스트롱맨’이라 불리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영합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