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57국에 부과하기로 한 상호 관세를 더 이상 유예하지 않고 모든 국가에 관세율을 통보하는 서한을 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지난 29일 공개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달 8일까지 유예된 상호 관세에 대해 “(추가 연장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며 “우리가 할 일은 모든 국가에 서한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7일 스콧 베선트 미 재무 장관이 유예 시한을 9월 1일까지 연장할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트럼프는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트럼프는 “200국과 모두 협상할 수는 없다. (앞으로 보낼) 서한이 무역 협상의 끝”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우리가 할 일은 서한으로 ‘미국에서 무역을 허용했으니 당신은 25%, 35%, 50% 또는 10%의 관세를 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자체 분석한 ‘무역 불균형’에 따라 국가별로 최저 10%, 최대 50%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일본·한국이 미국 자동차 업체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받는 협정 체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회자 질문에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그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200국 모두와 상대 못 해… 서한이 무역 협상의 끝”

자동차 관세에 관한 트럼프의 발언은 한국과 일본산 자동차에 관세를 인하해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2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대미 무역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낮추는 것이 최대 목표 중 하나다. 최근 미국은 영국산 자동차에 대해선 연간 10만대까지 쿼터를 두고 관세를 10%만 적용하기로 했는데, 자동차 수입량이 많은 일본·한국에도 이 같은 쿼터를 허용할지 미지수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미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는 0%이기 때문에, 폭스뉴스 사회자의 ‘미국 자동차 업체가 차별 받을 우려’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한국·일본과의 자동차 교역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협상이 교착 상태인 일본을 언급하며 “서한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또 일본이 미국산 자동차를 많이 수입하지 않는 반면 미국은 수백만 대의 일본 차를 수입한다고 언급하며 “그것은 불공평하다” “우리는 일본과 큰 무역 적자를 갖고 있고, 그들은 이해한다”고 했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상황인 만큼, 한국에도 서한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무역 상대국별 상호 관세를 같은 달 9일 90일간 유예했고, 이후 국가별로 무역 협상을 벌여왔다. 다만,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워싱턴 DC 특파원 간담회에서 우리 정부는 아직 미국으로부터 관세와 관련된 어떤 서한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이 같은 발언은 협상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자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가 야심 차게 내건 ‘글로벌 무역 질서 재편’ 구상이 관세 유예 시한을 불과 열흘 앞두고 좌초 위기에 놓였다”며 현재까지 체결된 합의가 중국·영국과의 ‘기본 합의’ 2건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일본과도 7번의 장관급 협의가 있었지만 쌍방의 골이 메워지지 않았고, 캐나다의 경우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을 문제 삼아 지난달 27일 모든 무역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대만,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일부 국가와 무역 합의에 근접해 가고 있고 한국과도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폴리티코는 “협상 상대국의 국내 여론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채찍만 휘두르고 당근을 주지 않는 트럼프의 접근법이 오히려 역풍을 불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