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미 국무부가 민주주의·인권·노동국(DRL)을 통해 지원된 391개 보조금 중 중국·예멘 프로그램 등 2개만 남기고 지급을 중단하도록 권고받았다고 가디언이 26일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날 국무부 관계자 3명을 인용해 “약 13억 달러(1조7600억원)의 보조금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국무부는 DRL을 통해 오랜 기간 대북 인권 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해왔는데, 트럼프 정부의 대외 원조 삭감 정책에 따라 보조금 지급 중단이 현실화할 경우 이미 자금난에 직면한 국내외 북한 인권 운동에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권고는 ‘트럼프 제국의 설계자’라 불리는 러셀 보트가 이끄는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검토 결과를 브리핑받은 국무부 관계자는 “국무부가 진행하는 미 정부 해외 원조의 약 80%가 중단될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국무부는 가치·규범을 강조하며 대외 문제에 적극 개입하던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어젠다 실행에 앞장서는 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직업 외교관 상당수가 구조조정됐고, 이 빈자리를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메우고 있다.

국무부는 그동안 DRL을 통해 북한·쿠바·베네수엘라 등에서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권위주의 정권의 국가적 탄압에 맞설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공정 선거, 반(反)인권 예방 프로그램 등을 지원해왔다. 특히 라디오 방송 같은 대북 정보 유입, 인권 유린 가해자에 대한 책임 추궁과 데이터베이스(DB)화 등 북한 인권 관련 활동을 하는 국내 시민단체들에 매년 수십만 달러씩 지원하며 자금줄 역할을 했다. 한 소식통은 가디언에 “이 프로그램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 사회에 생명선을 제공하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상원의원 시절 외교위에서 주로 활동하며 이런 대외 원조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입장을 바꿔 대규모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다. 민주당 상원의원 10명은 지난달 국무부에 DRL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해 “공포·억압으로 지배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그들이 신이 부여한 권리를 완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미국이 옹호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드라이브를 건 연방 정부 구조조정 여파로 국무부·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이 자금 집행을 중단했고, 북한 주민에게 민주주의를 알려온 미국의 소리(VOA)·자유아시아방송(RFA) 송출까지 중단되면서 국내외 북한 인권 운동은 고사 위기에 처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