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김(왼쪽) 전 보건복지부 부차관보와 6·25 참전 용사였던 고(故) 찰스 랭걸 전 하원의원. 두 사람은 의원과 보좌관으로 7년을 동고동락했다. /한나 김 전 부차관보 제공

“찰스 랭걸 의원의 한국과 한국인을 향한 애정은 항상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부디 이 위대한 영웅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지난달 26일 아흔다섯 살로 타계한 6·25 참전 용사 출신 찰스 랭걸 전 미 연방 하원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한나 김(42·한국 이름 김예진) 전 보건복지부 부차관보는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두고 24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랭걸의 한국 사랑’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현재 미국 내 6·25 보훈 민간 단체 ‘리멤버 727’을 이끌고 있다. 학생 시절이던 2007년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기념비를 처음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 50주(州)를 비롯해 6개 대륙 30국을 돌며 참전 용사 1200명을 만났는데 이 때문에 전 세계 6·25 참전 용사들로부터 ‘명예 손녀’라고도 불린다.

랭걸과의 인연의 시작은 김 전 부차관보가 대학원생이었던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 3만6000여 명이 희생되며 동맹을 지켜낸 전쟁이 미국 사회에서 잊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한나 김은 정전일(7월 27일)을 기념일로 지정해 달라는 법안의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펴고 있었다. 그 취지에 공감한 랭걸 의원이 선뜻 발의자로 나서면서 기념일 제정이 급물살을 탔다. 김 전 부차관보는 랭걸이 법안을 발의하던 2008년 6월 25일을 “내 기억에 영원히 새겨진 날”이라며 “워싱턴 DC에서 새벽 6시에 버스를 타고 6시간 반을 이동해 뉴욕 플러싱으로 갔다. 지치고 절망에 빠진 내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한 번의 시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랭걸 의원과 전화 연결이 됐고, 그날 저녁 ‘의장이 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음성 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6·25 전쟁에 파병된 랭걸은 평양 대동강 인근 군우리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총을 맞으면서도 전우 40여 명의 목숨을 구하는 전공을 세워 여러 무공 훈장을 받았고, 전역 뒤에는 연방 검사를 거쳐 민주당 연방 하원 의원으로 46년간 활동했다. 의회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한국을 옹호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2000년대 초반 친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코커스’를 공동 창립해 이끌었고, 민주당 동료들 사이에서 지지가 부족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지지했다. 김 전 부차관보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은 저를 항상 감동시켰다”며 “2017년 1월 퇴임 후 보건복지부 부차관보로 근무했고 바이든 정부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특권도 가졌지만, 랭걸 의원과 함께한 일한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뛰어난 경험이었다. 그가 발의하고 통과시킨 5건의 한국 법안 작성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했다.

한나 김(오른쪽) 전 보건복지부 부차관보와 고 찰스 랭걸 의원. /한나 김 전 부차관보 제공

김 전 부차관보는 “랭걸 의원은 단순한 상사가 아니라 내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게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의 희생 덕분이라는 걸 매일 일깨워준 영웅이자 아버지 같았던 사람(like a father)”이라며 “그는 한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커리어 내내 한국 국민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유지했다. 랭걸 의원과 같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한반도 평화 증진에 헌신해야 한다”고 했다. 랭걸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5월 26일)에 95번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세상을 떴다. 김 전 부차관보는 최근 우리 국회가 랭걸을 기리는 결의안 것을 채택과 관련해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