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미국 워싱턴 DC 레스토랑 '더 모노클'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벽면에 레스토랑 VIP인 정치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그래도 공화당과 민주당 사람들이 먹고 마시면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정치적 도피처(political refuge)’가 아직 한 곳은 남아 있다.”

미국 워싱턴 DC의 지역 전문 매체인 ‘워싱토니언’이 이렇게 평가한 레스토랑 ‘더 모노클(The Monocle)’은 미 의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 중 하나다. 상원 건물인 ‘더크센 빌딩’과 맞닿아 있어 걸어도 3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데, “의사당에서 돌 던질 거리”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이 대선에서 경쟁하던 1960년 10월 코니·헬렌 발라노스 부부가 시작한 이 업장은 콧대 높은 정치인들 입맛을 맞추며 의회 앞에서 무려 65년을 버텼다. 지금은 점심·저녁이면 전·현직 상·하원 의원과 보좌진, 의회 직원, 언론인 등 업계 관계자들이 두루 섞이는 워싱턴 DC의 주요한 네트워킹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27일 점심 찾은 ‘더 모노클’ 안에선 칼정장에 넥타이를 맨 인사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먹고 마시며 무언가를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벽면에는 식당의 ‘VIP’인 고위 정치인들의 사진과 함께 이들이 남긴 메시지와 서명을 볼 수 있다. 여기에 걸려 있는 정치인들은 진보·보수를 망라하고 있는데 반세기 동안 수집한 것이다. 트럼프 시대 들어 잘나간다는 케이티 브릿·팀 스콧 공화당 상원의원,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한편에는 트럼프에 미운털이 박힌 미치 매코널 전 상원 원내대표의 배우자인 일레인 차오 전 노동부 장관, 60년대를 주름잡았던 로버트 F. 케네디 전 상원의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사진도 걸려 있었다. 남자 화장실 안에선 근엄한 표정을 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흑백 사진을 볼 수 있다. 식당 관계자는 “누가 오느냐에 따라 사진을 재배치해 더 눈에 띄게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 DC 레스토랑 '더 모노클' 내부 모습.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세계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 DC에서 오랜 기간 정계의 많은 이로부터 사랑받은 식당 내 벽과 기둥에 새겨진 문구 하나하나에 유머가 살아 있다. “워싱턴에서 친구를 원한다면 차라리 개를 한 마리 키우라” “배가 고픈 사람은 좋은 정치 자문을 해줄 수 없다” “여기서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걸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워싱턴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워싱턴은 말이 빛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유일한 도시다” 같은 것들이다. “의회는 엄청난 문제들과 다투는 남녀의 집합체” “제도는 사람보다 강하다” “나는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데 그중 하나는 유연성이다” 같은 문구같이 정치의 본령(本領)을 되새기게 하는 뼈 있는 말들도 있다. 한 전직 하원의원은 “워싱턴이 어떤 곳인지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식당 중 하나”라고 했다.

식당 2층에는 정치 모금 행사, 당 전략 회의 등을 진행하기에 안성맞춤인 프라이빗 룸이 있는데 “의회가 회기(會期) 중일 때는 보통 한 달 이상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한다. 의회 관계자는 “하도 의원들 방문이 잦다 보니 의회와 식당 사이에 비밀 터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돌 정도”라고 했다. 식당 영업 시간은 평일 점심·저녁(오전 11시 45분~오후 10시)이지만, 매일 아침에도 조찬을 겸한 다양한 정치 행사가 열린다. 30달러(약 4만1000원)가 조금 넘는 스테이크와 크랩 케이크가 주력 메뉴인데, 의원들이 주로 찾는 의회 주변에 즐비한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들과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메뉴 하나하나가 과하지 않고 단순함을 추구하는 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모노클은 의회의 ‘당파 드라마(partisan drama)’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여기서는 모든 정쟁(政爭)은 문 밖에 두게 된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 DC 레스토랑 '더 모노클' 외부 모습. /워싱턴=김은중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