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시간 전화 통화를 가진 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終戰)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협상이 이뤄질 것 같지 않으면 물러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재집권 이후 푸틴과 세 번째 통화를 가졌다. 미·러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진행된 이번 통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근본적인 이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기대를 모았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휴전’ 합의나 우·러 정상 회담 개최 등 돌파구도 마련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진전이 없으면) 그냥 물러날 것(back away)”이라고 반복해 말했다고 백악관 풀 기자단이 전했다. 우·러는 지난 16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만나 고위급 협상을 했지만 아무 성과 없이 끝나 후속 일정도 잡지 못한 상태다. 트럼프는 “무언가 일어날 것 같지만 큰 자존심들이 얽혀 있다”며 푸틴을 향해 “우리는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통화에서는 “언제 이 피의 대학살 끝낼 거냐, 블라디미르(Vladimir)?”라고 물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앞서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도 푸틴에게 미국과의 교역 확대라는 ‘당근’을 제시하며 협상 참여를 촉구했다. 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별도로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미국이 중재 외교에서 손을 뗄 시점, 이른바 ‘레드 라인(red line)’을 묻는 질문에 “(분쟁 개입을 중단할 시점이) 머릿속에 있다”면서도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어 특정 선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푸틴은 이날 통화 이후 “옳은 길을 가고 있고, 적절한 합의에 도달하면 휴전할 수 있다”면서도 “러시아의 입장은 명백하다. 중요한 것은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와 비(非)군사화, 크림반도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영토 편입 등 기존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트럼프가 이날 “우·러 양측이 휴전, 더 중요한 전쟁 종식을 향한 협상을 즉시 시작할 것”이라 했지만, 대화 재개를 위한 세부 사항은 추가 협의가 필요해 대화가 상당 기간 공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 외교가에서는 기대를 모았던 이번 통화가 사실상 ‘빈손’으로 끝났다는 박한 평가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즉시 협상이 시작될 것이란 트럼프의 주장이 푸틴의 신중한 발언과 대조를 이뤘다”고 했다. 젤렌스키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트럼프에게 ‘전쟁 종식을 위해 직접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영토에서 군대를 철수하거나 러시아 측의 최후 통첩에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미국인 출신으로는 처음 교황이 된 레오 14세가 종전 협상을 중재하는 아이디어에 대해 “바티칸에서 협상이 열린다면 좋은 일이 될 것 같다”며 “엄청난 분노와 증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교황이 우·러 회담 장소로 바티칸을 제안한 사실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