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서 피격당한 직후의 모습. 이 사진은 AP통신의 에번 부치 기자가 찍은 것이다. /AP 연합뉴스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선거 유세 당시 총격을 당했던 순간, 파란 하늘과 성조기를 배경으로 피를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를 절묘하게 포착한 AP통신의 에번 부치(48) 사진기자가 백악관 취재를 거부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는 AP가 자신이 명칭을 변경한 ‘아메리카만(옛 멕시코만)’ 표기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무실·전용기 출입을 금지시켰는데, 자신의 당선에 큰 기여를 한 기자까지 출입을 막은 것이다.

부치는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AP 스타일북에 대한 갈등 때문에 트럼프 정부는 내가 백악관의 모든 행사를 다루는 것을 금지시켰다”며 “빨리 문제가 해결이 돼 역사를 기록하는 내 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AP 스타일북’은 180년 역사를 자랑하는 AP가 1953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기사 작성 지침으로, 정교하게 정리돼 있어 다른 언론사들도 교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트럼프 측은 AP 스타일북의 단어 선택이나 지침이 “진보에 편향됐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부치의 사진 덕분에 당시 대선에서 분위기 반전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진은 트럼프의 희생과 강인함, 영웅적 이미지를 동시에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임지는 당시 “역사적 중요성, 명료한 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긴장감 등 사건의 모든 것이 이미지 하나에 다 들어 있다”고 했다. 사건 직후 트럼프는 호감도가 4% 상승하며 ‘대세론’에 올라탔다.

트럼프 자신이 부치의 사진이 표지에 실린 사진첩을 이시바 일본 총리에게 정상회담에서 선물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의 백악관 출입을 막으면서, 부치의 출입까지 막아버린 것이다.

부치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20년 넘게 현장을 누빈 AP 워싱턴 지국의 베테랑 사진기자로 202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부치는 지난해 7월 본지 인터뷰에서 “사진기자의 저주는 결코 두 번째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란 직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셔터를 눌렀다”고 했다.

에번 부치 AP통신 사진기자. /인스타그램

한편, 트럼프 백악관과 주류 언론 간 갈등이 점입가경인 모습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7일 트럼프에 우호적인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을 소집해 만남을 가졌다. 그는 “이분들은 대부분의 주류 언론 기자들보다 더 많은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다”며 “언론 지형이 바뀌었고 트럼프 백악관은 그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백악관은 또 이날 트럼프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매체인 ‘데일리 시그널’ 기자를 대표 기자단인 ’풀(pool) 기자’에 임의로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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