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관료주의를 향한 전동톱입니다!”
미국 메릴랜드주 내셔널 하버에서 열리고 있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 둘째 날인 20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올라 빨간 전동톱을 휘두르며 외쳤다. 함께 등장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머스크에게 선물한 톱이었다. 밀레이는 아르헨티나의 ‘퍼주기 복지’를 근절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전동톱을 내세운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서 거침없는 정부 구조 조정을 주도하는 머스크가 이를 이어받아 관료주의를 뿌리 뽑겠다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정치 단체 미국보수연합(ACU)이 1974년부터 주최하는 이 행사는 공화당 유력 인사부터 보수 성향 연구자, 대학생, 시민 등이 모여 나흘간 진행한다. 프로풋볼 챔피언 결정전에 빗대 ‘정치 수퍼볼’로도 불린다. 공화당의 정권 탈환 의지가 불타올랐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축제 분위기였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축하하고 불법 이민 단속,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폐지 등 트럼프의 정책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날 J D 밴스 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과 가치를 공유해야 견고한 동맹”이라면서 유럽의 포용적 이민 정책과 혐오 발언 규제를 겨냥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행사에 직접 참석해 연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국경 차르(총책임자)’ 톰 호먼,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등 트럼프의 최측근들이 총출동한다. 가디언은 “올해 행사는 변방의 매가(MAGA·트럼프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이 어떻게 주류로 자리 잡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의 팟캐스트 ‘워 룸’이 현장에서 진행한 방송에선 최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유럽 출장에 동행했던 보수 활동가 잭 포소빅이 무대에 올랐다. 포소빅은 트럼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옹호하면서 “전쟁을 끝내려는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축복인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가 호전광이라고 비판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콧수염을 포소빅이 조롱하며 “3차 세계대전이 취소돼 미안하다. 잘 가라”고 말하자 웃음과 환호가 쏟아졌다. 위스콘신에서 온 샐리씨는 “이제 우크라이나 소식을 듣거나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 얼굴만 봐도 피곤하다”며 “우리 납세자들의 돈이 (우크라이나 지원보다) 더 의미 있는 곳에 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장에선 친(親)트럼프 방송사 뉴스맥스가 가장 큰 규모로 세트장을 설치했다. ‘무(無)검열’을 내세워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소셜미디어 서비스 팔러도 부스를 차렸다. 포소빅은 “백악관은 새로운 미디어를 도입하고 있다”며 “투명성에 대한 그들의 과감한 노력은 정말 놀랍다”고 했다. 브라질·아르헨티나·오스트리아 등 외국에서 온 참가자도 많았다. ACU가 최근 미국 밖으로 외연 확장을 시도한 결과다. CPAC의 한국 행사가 2019년 서울에서 열렸고, 트럼프 측근인 맷 슐랩 ACU 의장은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윤 대통령과 서울 관저에서 만났다.
앞서 전날 만난 지지자 여섯 명은 트럼프 이름 철자 T, R, U, M, P를 각각 큼지막하게 써붙인 옷과 자유의 여신상 복장으로 행사장을 누볐다. 국경 지대에서 온 자칭 ‘텍사스의 트럼프족(族)’인 이들은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 추방에 적극 나서는 데 대해 “하루하루 진심으로 행복하다”면서 “번지르르한 소리로 폼만 잡았던 바이든과 달리 트럼프는 미국인만 생각하는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했다. 슐랩 의장은 “트럼프 당선으로 이 나라에 두 번째 기회를 준 신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행사 관계자는 “정권을 4년 만에 되찾은 직후라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열기가 뜨거울 것으로 본다”며 “그야말로 트럼프의 신격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