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47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백악관에 복귀했습니다. 취임 후 트럼프의 행보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고, 그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전 세계 정치·경제 지형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설 연휴를 맞아 미국 정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 다섯 개를 추렸습니다.

◇ 미국인의 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 모습. /넷플릭스

트럼프가 지난 20일 취임하면서 ‘트럼프 2기’가 열렸습니다. 2016년 대통령에 처음 당선될 당시만 해도 미국 정치 역사의 ‘돌발 사고’처럼 여겨졌던 ‘대통령 트럼프’였지만, 두 차례 당선에 성공하면서 ‘그에겐 뭔가 있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인 ‘트럼프: 미국인의 꿈(Trump: An American Dream)’은 아버지의 부동산 개발 회사를 물려받아 성장시키고, 방송인으로 이름을 알리며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트럼프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트럼프 ‘1기’ 첫해인 2017년 나왔는데, 지금 보아도 트럼프라는 인간 ‘개인’을 이해하는 데는 더 없이 좋다고 생각해 추천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총 4회로 연휴에 가볍게 몰아보기 좋습니다. 한 회가 10년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970년대 기업을 일굴 때부터 1980년대 미 동부 카지노 도시인 애틀랜틱 시티 개발 사업을 성공시키며 ‘파티 보이’로 자리 잡은 트럼프, 이후 이어지는 결혼과 외도, 이혼 등 요란한 개인사와 2000년대 ‘방송인 트럼프’의 성공 스토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한때 ‘부동산업계의 로버트 레드포드’라 불렸던 젊은 날 트럼프의 모습과 이제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간 트럼프 자녀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 바이스

딕 체니 전 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서 국방장관, 미 부통령까지 지낸 딕 체니의 생애를 그린 아담 멕케이 감독의 블랙코미디 전기(傳記) 영화입니다. 제목 ‘바이스(Vice)’는 부통령의 ‘부(副)’를 뜻하기도 하지만 ‘악덕’이란 뜻도 가진 중의적 표현입니다. 조지 W 부시 정권의 2인자로 역사상 가장 막강한 부통령 소리를 들은 체니가 어떻게 출세 가도를 달렸고, 부통령 재임 기간 발생한 9·11 테러 이후 막후 대테러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명하고 있습니다. 체니는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등 이른바 ‘악의 축’과의 전쟁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로 친숙한 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체중 증량, 노인 분장 등을 통해 현존하는 인물인 체니와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자랑한 것이 눈여겨볼 만합니다. 배우자 린 체니를 연기한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지루할 수 있는 정치극이지만 중간에 가상 상황을 삽입하거나 극적인 장면을 슬로 모션으로 보여주는 등 편집의 묘미를 살렸습니다. 참고로 공화당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체니는 지난 대선에서 그의 딸인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과 함께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습니다.

◇ 미스터 맥마흔

2007년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맞붙은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빈스 맥마흔(가운데)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 창업자. 맥마흔 쪽이 경기에서 지자 벌칙으로 트럼프가 그의 머리칼을 깎고 있다. 맥마흔은 1980년대 트럼프를 프로레슬링 무대에 등장시키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고, 2016년 대선부터는 트럼프에게 막대한 선거 자금을 후원해 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대선을 두 달 앞둔 작년 9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미스터 맥마흔’은 세계 최대 프로레슬링 조직인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을 창설한 빈스 맥마흔의 일대기를 다룬 6부작입니다. WWE는 연 매출이 약 2조원에 가까운 미국 대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1980년대 맥마흔이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인수한 이후 세계적인 단체로 거듭났습니다.

이 시리즈는 억만장자 맥마흔이 WWE를 이끌고 성장시킨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적지 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의 아내 린다 맥마흔(요즘엔 ‘맥맨’으로 표기합니다)은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중소기업청 청장으로 임명돼 2019년까지 재직했습니다. 이번 2기 내각 때도 린다는 트럼프의 선택을 받아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됐지요. 시리즈를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인 헐크 호건은 미국 프로레스링계의 전설이자 트럼프의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잠시 WWE를 떠나 다른 조직에 몸담긴 했지만 빈스 맥마흔과 함께 WWE 부흥기를 이끌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화에는 이들과 가까운 사이인 트럼프가 실제 경기에 등장한 장면도 나옵니다.

◇ 하우스 오브 카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중 한 장면. /넷플릭스

미국 정치 드라마(영화) 중 현실 정치 못지 않은 긴장감과 생생함을 그린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와 ‘웨스트 윙(The West Wing)’은 모두 ‘고전’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음모와 광기의 정치 세계를 그렸다면, ‘웨스트 윙’은 정의감과 이상주의로 가득 찬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며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미국 정치를 묘사합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2013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시작해 2018년까지 총 여섯 시즌으로 제작됐습니다. 미국 정계의 음모와 배신, 권력 다툼이 치열하게 펼쳐지며 방영 당시부터 기존의 정치 드라마와 달리 냉엄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현실보다 더 적나라하게 묘사해 화제가 됐습니다.

줄거리는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였던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가 냉혹한 정치 공작과 끊임없는 음모를 통해 부통령을 거쳐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는 언론을 교묘히 이용하고, 때론 비밀을 가진 인사들을 협박하거나 매수해 권력을 확장합니다. 로비스트와 보좌관, 그리고 각종 기관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 역시 현실적이면서도 자극적입니다.

프랭크의 부인 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 역시 거침없는 야망을 펼치며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서 여성 리더십이 보여 줄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냉혹함과 민첩함을 구현합니다. 부부가 함께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때론 서로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모습은, 권력이 개인의 신념과 감정마저 왜곡시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내각 인선, 외교 갈등, 대선 캠페인 등을 둘러싼 음모는 점점 복잡해지고, 매 에피소드마다 시청자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반전이 이어집니다. 뒤로 갈수록 다소 늘어지고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평가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가 외면하고 싶은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를 날카롭게 직시한 정치 드라마란 점을 부정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 웨스트 윙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의 출연진. /조선일보DB

‘웨스트 윙’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NBC에서 총 7개 시즌으로 방영된 미국 드라마입니다. 백악관 서쪽 건물(웨스트 윙)에서 벌어지는 대통령과 참모진의 일상을 촘촘하게 그려냅니다. 주인공은 민주당 소속의 바틀렛 대통령(마틴 쉰)과 그의 보좌관들로, 이들은 복잡다단한 국내외 현안 앞에서 이상주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을 고민합니다. 드라마 속 에피소드들은 건강보험 개혁, 총기 규제, 교육 제도, 국방 문제 등 다양한 현안을 폭넓게 다룹니다. 이 과정에 참모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법안과 정책을 모델 삼아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반대파와 협상을 벌이며, 언론과 국민을 설득합니다.

수석 보좌관 레오, 언론 담당 CJ, 수석연설문 담당 샘, 그리고 대변인 조쉬 등 서로 다른 성향과 배경을 가진 보좌진들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과정에서 충돌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 역시 현실 정치의 메커니즘을 깨닫습니다. 이들은 중요한 국가 사안을 다루면서도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고, 때로는 멱살잡이까지 할 정도로 격정적으로 대치합니다.

‘웨스트 윙’은 정치의 긍정적 가능성을 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냉소와 불신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이 드라마는 정치인들이 헌법과 원칙을 지키려 애쓰고, 공공선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백악관이라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국정 운영과 갈등 조정, 그리고 인간적인 유대가 어우러지면서 첫 방영 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웨스트 윙’은 정치 드라마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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