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워싱턴 DC에서 취임식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피털 원 아레나’ 경기장 무대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UPI 연합뉴스

“바이든이 이렇게 하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나. 그는 절대로 이렇게 못 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DC 의사당에서 20일 정오에 열린 취임식을 마친 후 지지자 약 2만명이 모인 ‘캐피털 원 아레나’ 경기장을 찾았다. 취임 자축 연설을 마친 그는 무대 한편에 마련한 책상에 앉아 미리 쌓아둔 대통령 행정명령에 차례로 서명하기 시작했다. 전날 같은 장소에서 “취임 첫날부터 역사적인 속도와 힘으로 일하겠다”고 말한 그대로였다. 행정명령은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이 즉각 시행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 ‘1호’는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의 군 복무 허용, 연방 정부에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적용, 쿠바의 테러 지원국 지정 철회 등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승인한 행정명령 및 교서 78건을 철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불법 이주자 통제, 연방 공무원 신규 고용 중지 및 재택근무 금지 등에 서명할 때마다 지지자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트럼프는 이곳에서 행정명령 여덟 건을 승인하고 나서, 서명할 때 쓴 펜 여러 자루를 지지자들에게 선물처럼 던졌다. 미 언론들은 이를 두고 “지지층을 흥분시키는 기발한 퍼포먼스”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이후 백악관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행정명령에 추가로 서명하고 약식 기자회견에서 30분 넘게 질문을 받았다.

이날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은 46건이었다. 1기 때 한 건,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 때 아홉 건을 크게 뛰어넘는, 첫날 기준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엔 불법 이주자 차단을 위한 조치가 다수 포함됐다. 먼저 바이든 정부 들어 불법 이주자가 급증한 멕시코 접경 지대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 선포를 통해 남부 국경에 군대를 배치해 모든 불법 입국자를 가두고, 국경 장벽 건설에 국방 예산을 투입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는 불법 체류자여도 미국 영토 안에서 낳은 자녀에겐 자동으로 미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지(出生地)주의를 적용하지 않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CNN은 “헌법 14조가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준다’고 규정하고 있어 “법적 논란과 소송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1기 때에 이어 이번에도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 트럼프가 2020년 7월 탈퇴한 것을 바이든이 취임 직후인 이듬해 되돌렸는데 다시 뒤집었다. 트럼프는 “우리는 불공정한 갈취에서 탈퇴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트럼프는 1기 때인 2020년 코로나가 확산할 때도 WHO가 중국에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탈퇴를 통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절차에 시간이 오래 걸려 탈퇴하지 못한 채 임기가 끝났다.

행정명령 서명한 펜, 지지자들에게 선물 - 미국 워싱턴 DC 의사당에서 20일 취임식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 약 2만명이 모인 ‘캐피털 원 아레나’ 경기장을 찾아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관중석을 향해 펜을 던지는 모습.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이 경기장에 모여 취임식을 생중계로 지켜봤고 취임식 후 이곳을 방문한 트럼프가 행정명령에 무더기로 서명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자 환호했다. 트럼프 뒤는 J D 밴스 부통령. /게티이미지코리아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패배한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한 지지자들이 이듬해 1월 의회를 습격한 이른바 ‘1·6 사태’와 관련해 처벌받은 1600여 명을 사면하고 14명은 감형했다. 트럼프 자신도 1·6 사태를 선동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후 법무부가 ‘현직 대통령 불기소 방침’에 따라 사법 절차를 중단했다.

트럼프는 예고한 대로 중국계 바이트댄스가 모기업인 동영상 소셜미디어 틱톡이 미국 내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사업을 제한하는 ‘틱톡 금지법’ 시행을 75일간 유예했다. 바이든 정부 당시 중국 기업에서 미국인의 사생활을 보호한다며 내린 조치로 19일 법이 시행됐는데, 트럼프는 미 법인과 바이트댄스가 합작회사를 만들어 미국 기업 지분을 50% 이상으로 만드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세를 최고 100%까지 부과할 수 있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가 틱톡을 중국과 관세를 협상하는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고 전했다.

☞미국 대통령 행정명령

대통령이 정책을 신속하게 실현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의회의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효력을 갖는다. 미국 헌법 제2조의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속한다’는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주로 연방 정부기관의 운영을 지시하거나 기존 법률을 구체화하는 데 사용된다. 행정명령이 삼권분립(입법·사법·행정부의 권력 분리)의 원칙에 어긋나고 남용된다는 지적도 때때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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