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의학자·경제학자·물리학자 등 77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기 복지부장관 후보로 지명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70)의 인준을 거부해야 한다는 서한을 미 연방 상원에 보냈다고 9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미국에서 장관 지명자는 연방 상원에서 인준되는데 이를 막아달라는 뜻이다. 노벨 수상자들이 미국 내각 인선에 반대하는 성명 낸 건 이번이 최초라고 NYT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트럼프 2기 보건복지부(HHS) 장관에 지명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AP 연합뉴스

NYT는 이날 “75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상원의원들에게 트럼프가 지명한 보건 복지부 장관 후보의 인준을 승인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고 했다. 서안 초안을 작성한 1993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리처드 로버츠는 이날 NYT에 “가능한 한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그러나 케네디는 주류 의학에 대한 확고한 비판자로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그가 감독하게 될 과학자들이나 관련 기관에 적대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공격은 매우 해롭다”며 “(나를 포함한) 여러분은 일어나서 그것(과학)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서한에 따르면 이들 노벨상 수상자들은 “의학, 과학 또는 행정 분야에서 자격이 부족한 케네디가 공중 보건을 보호하고 생의학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는 부서를 이끌기에 적합한지 의문”이라며 “케네디를 보건복지부의 책임자로 임명할 경우 공중 보건이 위험에 처하고 미국이 보건 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달 13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건복지부(HHS) 장관으로 케네디 주니어 전 대선 후보를 지명했었다.

케네디 주니어는 미국 민주당의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의 일원이다. 하버드대와 런던정경대를 졸업하고 버지니아대 로스쿨을 거쳐 법조인이 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환경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기업을 상대로 여러 건의 재판에서 승소하며 이름을 알린 케네디 주니어는 2000년대 들어 백신 반대 운동을 적극 펼쳤다. 우연한 기회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백신의 위험성에 대해 논의했다는 회의록을 본 것이 계기였다고 알려졌다.

노벨 수상자들은 케네디가 근거 없는 음모론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케네디는 줄곧 “아동 백신에 들어 있는 보존제가 자폐증 유발에 영향을 준다”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불어닥쳤을 때에도 ‘백신을 통해 칩을 체내에 투여하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 한다’ ‘백신을 승인한 것은 앤서니 파우치(전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기 때문’ 등과 같은 음모론을 펼쳤다.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그의 계정을 아예 폐쇄하기도 했다.

노벨수상자들도 서한에서 “백신을 자폐증과 연관지어 거짓 주장을 하고,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이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과학적 증거를 거부했다”고 했다.

서한에는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미국 매사추세츠 의대 빅터 앰브로스(Victor Amvros·70) 교수와 하버드 의대 개리 러브컨(Gary Ruvkun·72) 교수,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대런 아제모을루와 사이먼 존슨 교수 등이 참여했다. 1989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해럴드 바머스는 “과학자라고 해서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 연구는 정치적 환경과 분리될 수 없다”며 이번 서한 참여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