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현직 대통령인데….”
오는 1월 20일 퇴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0여일 남았지만 최근 워싱턴DC 정가에서 그의 존재감을 찾기가 힘들다. 지난달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승 이후 바이든이 정치적 발언을 극도로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9일 “그(바이든)는 아직 42일간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해야하지만, 이미 몇 주 전 백악관을 떠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와 맞붙어 참패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침묵도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서는 “두 명의 임기가 아직 남았음에도 사실상 민주당 리더로서의 역할을 중단했다.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폴리티코는 20여명의 민주당 관계자 및 의원, 전·현직 백악관 보좌관 등을 접촉한 결과 “바이든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민주당이 트럼프에 맞서 싸울 구체적인 계획도 동기도 없는 채로 내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민주당의 참패로 인해 바이든은 사실상 정치 무대에서 사라진 상태”라며 “바이든은 즉흥적인 연설이나 언론의 질문을 피하고 있다. 트럼프의 승리나 정책 등에 대한 논쟁, 민주당의 미래 등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 있다”고 했다. 전직 백악관 고위 관리는 폴리티코에 “그는 마지막 임기에 너무 무심하고 이기적으로 임하고 있다”고도 했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 이후 바이든이 정치적인 발언을 중단하고 침묵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는 취지다.
폴리티코는 “백악관과 바이든은 선거 이후 당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민주당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며 “특히 바이든 백악관은 바이든의 정책 유산 등을 강조하는 데 국정 역량을 쏟고 있다”고 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백악관에는 리더십이 전혀 없다”며 “완전히 공백 상태”라고 했다. 특히 이달 초 불법 총기 소지 및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차남 헌터 바이든을 사면하는 등 가족에게 특혜를 줬다는 논란을 일으킨터라 민주당 내부의 실망감은 더욱 크다고 한다.
해리스 또한 대선 패배 이후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선거가 3주 지난 지난달 26일 해리스가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개최한 화상 회의의 일부 영상을 당의 엑스(X) 계정에 공개했지만, 표정이 유독 어둡고 수척한 모습이어서 논란이 됐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바이든이 대통령 권한을 트럼프에게 넘기고 있으며, 일부 민주당원들은 분노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바이든의 ‘조용한 존재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트럼프가 첫 당선됐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와 대조적”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당선인으로서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에 대해 비판하자 당시 백악관은 “대통령은 단 한 명뿐”이라는 입장을 내놨었다.
일부 백악관 보좌관들은 바이든이 ‘침묵’을 지키는 데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하고, 또 자신을 (대권 주자에서) 무례하게 밀어냈던 당에 더 이상 빚이 없다는 생각에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지난 6월27일 첫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상대로 말을 더듬거나 허공을 쳐다보는 등의 행동으로 참패하면서 고령 논란이 급속도로 커졌다. 결국 대선을 100여일 앞둔 7월 21일 사퇴했다. 그는 당시 사퇴 1시간 만에 다음 후보로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했다. 당시 당내에서 ‘바이든으로는 안된다’ ‘해리스로 말을 갈아타야 한다’는 의견이 거셌는데, 이런 민주당 내부 움직임에 서운한 점이 많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또 바이든이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약속한 만큼 차기 대통령인 트럼프에 대해 발언을 하는 것에 의도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측면도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