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뉴욕 브루클린의 박물관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대선은 11월 5일 치러지지만, 최종 승자가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 결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경합주 7곳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차 범위 내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개표가 지연되면 양 진영의 극단 분자들이 ‘부정 선거’를 주장할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되고 심할 경우 1·6 의회 습격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각 경합주 당국은 선거 부정 논란을 피하기 위해 최신 기술을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경합주마다 절차가 다르고 우편 투표는 11월 5일 이후 집계된다”며 “각 주의 선두가 바뀔 가능성이 있으며 박빙의 승부 속 최종 승자가 선언되기까지 며칠 또는 몇 주가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은 주법에 선거일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편 투표를 처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특히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 있는 펜실베이니아는 “투표 결과 발표가 가장 느린 주 중 한 곳이 될 것”(포브스)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 경우 전체 선거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미시간은 인구 5000명 미만인 소규모 지역은 선거일 전부터 개표할 수 있는 법이 마련돼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트럼프는 나치” 뉴욕 트럼프 유세장 밖에 시위대 -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7일 고향인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유세를 열었다. 뉴욕은 민주당 텃밭이지만, 그만큼 트럼프가 연설하면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트럼프의 예상대로 유세장엔 수천 명이 몰렸고, 유세장 밖에도 “트럼프는 나치와 같다”고 외치거나 피켓을 들고 트럼프를 반대하는 이들이 몰렸다. /AFP 연합뉴스

개표 속도가 중요한 건 선거 후 결과 발표가 며칠 동안 미뤄지고 법적 시비까지 생길 경우 부정 선거 주장에 기름을 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공화 양당은 각 경합주에 개표를 감시할 인력을 이미 대규모로 투입한 상태다.

특히 각 경합주 당국 관리자들은 우편 등을 통한 부재자 투표 개표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부정 선거 논란이 생길 수도 있어 특히 민감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 부재자 투표에 따라 추후 선거 결과가 뒤집히면 강성 지지자들의 반발이 클 수 있어서다.

가령 네바다는 선거 당일인 11월 5일 소인이 찍히고 나흘 이내에 도착한 우편 투표를 인정한다. 통상 우편 투표는 민주당에 유리한 경향이 있는데, 트럼프가 선거일 당일엔 앞서 나가다 이후 해리스에게 역전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노스캐롤라이나는 선거일 전에 처리한 우편 투표를 우선 결과에 반영하기 때문에 네바다와는 반대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24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해리스 지지자의 85%가 “개표가 끝나면 승자가 가려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답한 반면, 이렇게 응답한 트럼프 지지자 비율은 58%에 그쳤다. 그만큼 트럼프 지지자들이 개표 상황을 문제 삼으며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같은 논란을 가급적 피하기 위해 일부 경합 지역 당국은 선거 진행과 개표 과정에 최신 기술을 도입하기도 한다. 지난 2020년 대선이 ‘부정 선거’였다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을 의식한 조치다. “다시는 선거 불복과 이어진 폭력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애리조나 피널 카운티는 최근 3200만달러(443억5000만원)를 들여 약 5만3000㎡(1만6000평) 규모의 선거 본부를 지었다. 4년 전 피널 카운티 투표소 곳곳에서 투표 용지 부족 사태가 빚어졌고 인쇄 오류가 있는 투표용지 수천 장이 유권자들에게 잘못 발송돼 ‘부정 선거’ 논란이 거세던 곳인 만큼 선거 및 개표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신경 쓴 것이다. 올해 투표 현장엔 앞뒤와 좌우 360도로 촬영이 되는 보안카메라 10여 대를 투표소에 배치했고, 이를 통해 시민들이 언제든 이곳을 찾아 투표 현장을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피널 카운티는 또한 트럼프 진영 일각에서 “투표가 끝난 용지를 당국이 바꿔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투표함에 GPS(위치 정보 시스템)를 부착하고 이동 위치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조지아 풀턴 카운티는 2020년 대선 당시 외곽 창고 두 곳과 시내 사무실 등 총 세 곳에서 투표 및 개표·집계를 진행했으나, 이번엔 부정 선거 시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칸막이가 없이 전면 개방된 대형 창고를 도심 외곽에 마련했다. 모두가 개표·집계 과정을 볼 수 있게 해서 잡음이 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는 올해 초부터 선거 사무소에서 ‘가상 선거 체험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선거 사무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이 체험투어를 통해 투표부터 개표와 집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콜로라도주 더글러스 카운티에서는 투표용지함의 모습을 24시간 연중무휴로 생중계하고, 미시간에선 사전·부재자 투표 관련 데이터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서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