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 매코널 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로이터 연합뉴스

미치 매코널(82·Mitch McConnell)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오는 11월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28일 밝혔다. 2007년부터 17년을 상원 원내대표로 재직한 그는 미 의회 역사상 최장수 상원 원내대표다. 7선 상원의원이자 공화당 주류를 상징하는 인물인데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불화, 이른바 ‘메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 불리는 극단적 지지층의 퇴진 압박, 여기에 건강 문제까지 겹치며 무대에서 내려오게 됐다. CNN은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들은 이날 오후 매코널이 상원 연설에서 “인생의 가장 저평가 된 재능 중 하나는 언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지 타이밍을 아는 것”이라며 동료들에게 본인의 11월 퇴임 계획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매코널은 “나는 상원을 사랑했다”며 “내 인생 그 자체였고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1984년 켄터키주(州)에서 당선된 이래 상원의원 선거에서만 일곱 차례 당선된 그는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뒷자석에 앉아있는 젊은이가 아니다”라며 “이제는 다음 세대의 리더십을 위한 시간”이라고 했다. 처제의 사망으로 본인과 가족들이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점도 고백했다.

매코널은 1942년 앨라배마주 셰필드에서 태어났다. 1963년 워싱턴DC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을 듣고 감명을 받아 민권 운동 시위에 참여했고, 존 쿠퍼 상원의원 등의 인턴을 하며 정치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1967년 켄터키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보좌관으로 일했고, 1984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켄터키주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지원 유세를 온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그의 이름을 ‘미치 오도넬’이라 잘못 불렀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지만, 2020년까지 무려 7선을 하며 반세기 가까이 캐피톨 힐(의회)에 있었다.

매코널은 110대 의회가 개원한 2007년부터 공화당 원내대표로 재직했다. 2년 마다 치러지는 선거 결과에 따라 공화당은 다수당과 소수당을 오갔지만 매코널만큼은 공화당의 리더십 자리를 지켰다. 타고난 정무 감각과 순발력을 지녔는데 특히 버락 오바마 정부 때는 야당 대표로 주요 입법 어젠다와 사법부 인선 등을 번번이 좌절시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저승사자(Grim Reaper)’라는 별명이 붙었다.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필리버스터(filibuster)’를 앞세워 입법 절차를 지연시키고, 때로는 셧다운(shutdown)도 마다하지 않는 극단적 전술을 구사해 워싱턴 당파(黨派)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통했다. 매코널은 이날 “나에게 많은 잘못이 있지만 그게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2020년 3월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맨 앞줄)이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뒷줄 왼쪽에서 두번째)에게 법안에 서명한 펜을 넘기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 언론은 매코널의 퇴장을 트럼프의 부상, 나아가 공화당 주류의 변화와 연관지어 해석하고 있다. 매코널은 자유·시장경제, ‘세계 경찰’으로서의 미국의 역할 같은 보수의 전통적 가치에 공감했고 이런 세계관을 갖고 정치를 해온 인물이다. 최근에도 트럼프와 그를 추종하는 상원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600억 달러(약 80조1600억원) 짜리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처리를 요구해왔다. 매코널은 이날도 “나는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모범이 되는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A shining city upon a hill)’라는 레이건 대통령의 비전을 굳게 믿었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 1기 때는 트럼프와 호흡이 잘 맞아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 변화를 함께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메가 지지자들의 의회를 습격한 1·6 사태 이후 관계가 소원해졌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많은 상원의원들의 트럼프 지지 선언이 이어지고 있지만 매코널은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9월에는 기자회견 도중 질문을 받고 갑자기 사고가 멈춘 듯한 약 30초 간 말을 잇지 못한 이른바 ‘얼음 사건’이 일어났고, 이는 고령 정치인의 업무 수행 능력에 관한 논란으로 비화됐다. 매코널의 상원 동료들은 언론에 “매코널이 인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신체적인 제약은 일부 있는게 사실”이라고 했다. 매코널은 “언젠가 모든걸 돌아볼 시간이 오겠지만 오늘은 아니다”라며 “내 탱크에는 여전히 기름이 가득 차 있어 나의 비판자들을 실망시킬 수 있고, 나는 항상 그랬듯이 열정을 가지고 임할 것”이라고 했다. 지도부 리더십 자리에서 내려오더라도 2027년 1월까지 남은 임기는 채울 것이란 뜻으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