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선을 1년 앞둔 미국이 ‘선거 모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선거가 한국의 안보와 정치·경제·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피부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격주로 뉴스레터를 연재하며 지면 제약으로 다루지 못한 대선 관련 심층 뉴스를 전달드리고, 나중에는 선거 실황도 중계합니다. 뉴스레터 구독만으로 대선과 미국 정치의 ‘플러스 알파’를 잘 정리된 형태로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섯 번째 시간인 오늘의 주제는 조 바이든 대통령 못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 실수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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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석상이나 사교 모임에서 가끔 말이 헛나올 수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유독 이런 실수(gaffe)가 잦은 편이라 80이 넘는 그의 나이에 따른 ‘고령 리스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진보 진영에서도 상당한데요. 최근에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탠리컵에서 우승한 베가스 골든나이츠를 초청한 자리에서 사고(?)를 쳤습니다.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대통령’이라 소개한건데 눈치 빠른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벌써 이 장면이 하나의 밈(meme)이 됐습니다. 지난 9월에는 전설적인 흑인 랩퍼 엘엘 쿨 제이(LL Cool J)와 같이한 자리에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 아이(boy)”라고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죠.
그런데 그의 경쟁 상대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바이든만큼이나 말실수가 잦습니다. 트럼프 정부에서 법무 장관을 지낸 윌리엄 바가 최근 “그의 언어 능력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고 했을 정도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11일(현지 시각) 지적한 트럼프의 언행들을 한번 볼까요. 연설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터키 총리라 했고요, 바이든 정부를 오마바 정부라 표현하는 적도 잦았습니다. 2016년 선거에서는 “오바마를 이겼다”고 했는데 당시 트럼프의 상대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었죠.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자기 당 의원인 아남 푸트남 의원을 ‘풀럼(Pullam)’이라 호명(呼名)했습니다. 2016년 선거에선 9·11 테러를 ‘7·11 테러’라 표현해 유권자들을 경악시키고 2019년엔 팀 쿡 애플 CEO를 ‘팀 애플’이라 표현한 그였습니다. 적당히 보정(?)해서 알아들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지도자의 언어가 이래서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니 이런 트럼프의 언어와 인지 능력 앞에서 ‘좌우 합작’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트럼프와 3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한국 나이 기준으로 바이든이 올해 81세, 트럼프가 78세) 고령 리스크를 불식시켜야하는 바이든 측과 트럼프와의 리드를 좁히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공화당 후보들 간 이해가 맞아떨어진 겁니다.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X(옛 트위터) 계정에 가끔 연설에서 혼란스러워하거나 서있는 장소도 헷갈려하는 트럼프 영상이 올라오는데 바이든·해리스 공식 계정이 이를 공유하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민주당 측 전략가 로델 몰리뉴는 “트럼프가 우스꽝스럽고 미친 얘기를 많이 한다고 백날 떠드는 것 보다 훨씬 더 영리한 전략”이라 했죠. 유엔대사 경험이 있는 니키 헤일리 후보는 트럼프가 시진핑·김정은 등을 두둔한 과거 발언을 들어 “누가 미국의 동맹이고 적인지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기세는 파죽지세입니다. 이달 초 한 연설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등 글로벌 현안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대처를 비판하며 “세계를 2차 대전으로 밀어 넣고 있다”(원래대로라면 3차 대전이라 표현하는게 맞는데)고 말한 부분이 압권이죠.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장에는 등장하지 않으면서 강성 지지자들이 운집한 현장 연설,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 소셜’을 통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메시지만 내고 있습니다. 지지율이 고만고만한 공화당 후보들이 열심히 뛰고 있지만 2개월 뒤 열리는 ‘풍향계” 아이오와(코커스)·뉴햄프셔(프라이머리) 경선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 바이든 ‘리턴 매치’가 재현될 가능성이 커졌어요.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트럼프가 2024년의 가장 큰 위험”이라 했습니다.
트럼프가 이런저런 실수를 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의 일은 아니니 미국 내부에서는 우스꽝스런 일 중 하나로 치부돼 밈으로 소비되고 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실수가 한국이나 북한, 김정은이나 핵·미사일에 관한 것이라면 한반도나 동맹에 미칠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2017년 미·중 정상회담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아무렇지 않게 “한반도는 중국의 실제 일부였다더라”고 말한 게 트럼프입니다. 가정적인 상황이지만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윤(Yoon)’이 아니라 ‘문(Moon)’이라 말한다면? 트럼프 2기의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엉뚱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 입장과 의견을 주입하는 지난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년 11월 전까지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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