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 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게일로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서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워룸’의 리포터 제인 지클(가운데)이 환호하는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CPAC 행사장 곳곳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와 내년 대선 출마를 지지하는 ‘트럼프 2024′가 적힌 팻말이 보였다./AFP 연합뉴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외엔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 다른 후보들은 배신자다” “선거 부정은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트럼프만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

2일(현지 시각) 오전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州) 게일로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장. 상당수의 공화당 지지자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연호했다. 이들은 트럼프의 대선 선거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사장 곳곳을 누볐다. 미 보수 정치계 최대 행사인 CPAC는 그간 미 전역 공화당 풀뿌리 조직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트럼프 한 명을 위한 ‘대선 지지 모임’을 연상시켰다.

이날 메인 행사장 ‘포토맥 볼룸’ 주변엔 유명 보수 논객들, 온라인 매체들이 차려놓은 6.6㎡(약 2평) 남짓한 부스 수십 개가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이 중 한 곳에서 트럼프의 ‘책사’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온라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선 사기론’을 최전선에서 주장해 온 베개 회사 CEO 마이크 린델이 배넌에게 “다음 대선에서는 그들(민주당)의 ‘선거 부정(Election Lie)’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하자 청중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전날 텍사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로라 잭슨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이든이 추진하는 좌파 정책들을 트럼프가 뒤집지 않으면 미국은 망한다”고 했다.

바로 옆 부스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자신의 온라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지자들은 “돈(도널드) 주니어”를 외치며 기념 촬영을 하려고 길게 줄을 섰다. ABC뉴스, 폴리티코 등은 “(모든) 공화당원들의 활동 창구였던 이 행사는 최근 몇 년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위한 무대로 변모했다”며 “MAGA 우파 세력이 CPAC를 접수한 것”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의 공식 의제는 ‘중국 정찰 풍선 사태’ ‘미 연방수사국(FBI)의 과도한 트럼프 수사’ ‘바이든 행정부 이민 정책의 허점’ 등이었다. ‘친트럼프’로 분류되는 짐 조던 하원 의원, JD 밴스·릭 스콧·테드 크루즈 상원 의원 등이 잇따라 출연해 조 바이든 행정부 때리기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던 마이크 폼페이오와 트럼프에 이어 공화당에서 두 번째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연단에 오를 예정이다. 트럼프는 행사 마지막 날인 4일 저녁 연설에 나선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내 차기 대선 후보로 트럼프와 함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올해 행사에 불참했다. 1·6 미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트럼프와 거리를 두고 있는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CPAC 관계자는 “디샌티스, 펜스 모두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참석을) 거절했다”고 했다.

대신 디샌티스는 이번 주말 보수 성향 경제 단체인 ‘성장 클럽(Club for Growth)’에서 후원자 만찬에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다. 수천억원의 정치 후원금을 써 보수 정치계에서 ‘큰손’으로 꼽히는 성장 클럽은 한때 트럼프의 주요 후원 단체 중 한 명이었지만, 작년 중간 선거때부터 주요 행사 초청 명단에서 트럼프를 제외하면서 그와 거리를 두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친여(親與) 언론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내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특정 ‘(공화당 내 대선) 후보’들이 CPAC에 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들이 할 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당내 경쟁자들을 깔아뭉갰다. 그를 초대 명단에서 제외한 성장 클럽에 대해서도 “내가 안가겠다고 한 것”이라며 “(그 단체)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작년 8월 백악관 기밀 문건 유출 혐의로 사상 초유의 자택 압수 수색을 당한 뒤 궁지에 몰리는 듯했지만, 다시 지지율을 회복하고 있다. 미 에머슨대가 전국 유권자 1060명을 상대로 조사해 지난달 2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46%의 지지율로 양자 대결에서 바이든 대통령(42%)을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지지층의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55%로 압도적 1위였다. 그 뒤로 디샌티스(25%), 펜스(8%), 헤일리(5%), 폼페이오(1%) 순이었다.

CPAC는 행사 마지막 날 참가자들을 상대로 비공식 여론조사(straw poll)를 진행한 뒤 그 결과를 발표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작년까지 트럼프는 확고한 1위였다”면서도 “(작년 행사에서 2위였던) 디샌티스가 행사에 불참했음에도 의외로 선전할 경우 트럼프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