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이상한 겨울이다. 어른들은 눈 치울 일 없어 좋지만, 썰매 타고 눈사람 만들기만 기다리는 손주들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다.”
뉴욕 토박이인 60대 토머스씨는 최근 추적추적 비 오는 날 기자와 날씨 이야기를 나누다 이렇게 말했다. 요즘 뉴요커들 최대 화제는 ‘눈[雪]이 없어 섭섭한 겨울’이다. 통상 뉴욕시 일대에선 12월 초·중순 첫눈을 시작으로 큰 눈이 몇 차례 내리고 이듬해 3~4월까지도 눈이 녹지 않는다. 겨우내 방수 기능이 있는 스노 부츠를 신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늦가을 같은 영상권 기온이 이어지면서 요즘은 영화에 나오는 새하얀 뉴욕의 겨울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에도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뉴욕시에는 지난해 3월 9일 후 지난 29일(현지 시각)까지 326일째 눈이 내리지 않아 1973년 이후 반세기 만에 최장 ‘눈 가뭄’ 기록을 경신했다. 뉴욕에선 맨해튼 센트럴파크에 0.1인치(0.25cm)의 눈이 쌓여야 기상학적 적설량으로 집계하는데, 눈발이 날린 적이 서너 번 있었지만 금세 비로 바뀌었다. 뉴욕 역대 최장 눈 가뭄 기록은 2020년의 332일인데, 앞으로 7~10일은 눈 예보가 없어 1869년 기상 관측 이래 154년 만의 눈 가뭄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워싱턴 DC나 필라델피아 등 동부 해안 일대의 상황도 비슷하다. 겨울이 짧고 따뜻해지는 이상 기후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난동(暖冬)’을 불러온 것이다.
뉴욕시 내 썰매장이나 인근 스키장은 제대로 영업을 못 하고 있다. 대규모 스키장은 인공 눈을 뿌려놓았지만 “자연설과 달리 딱딱해서 싫다” “가뜩이나 온난화로 눈이 안 오는데 제조 과정에 탄소 배출이 많은 인공 눈까지 소비해야 하느냐”며 거부감 갖는 이가 많다.
최대 ‘피해자’는 역시 아이들이다. 30대 주부 헤일리씨는 “두 아들이 스키 장비와 리프트권을 미리 사놨는데 아무래도 못 쓰게 될 것 같다”며 “겨울 놀 거리가 너무 없어 실내 워터파크 시즌권을 끊었다”고 말했다. 겨울방학이 짧은 미국 초·중·고교에는 큰 눈이 온 날 5일 이상 휴교하는 스노 데이(snow day) 제도가 있는데, 이 비공식 방학도 사라지게 됐다. 교사들도 “눈이라도 와야 좀 쉬는데…”라며 내심 섭섭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