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군축·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지낸 게리 세이모어 미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이 확장억제(핵우산)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국에 재확인해 줄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실패할 경우, 다자적 국제 제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美 CSIS 홈페이지

지난 4일 북한은 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중국 공산당이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진행하는 18일 밤에도 동해와 서해상에서 250발의 포격 도발에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곧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7차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1990년대부터 30년 넘게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하며 북한 문제에 관여해 온 게리 세이모어(69) 하버드대 벨퍼 과학국제문제연구소장은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추가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이뤄지지 않게 막아주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라며 북·중 관계가 더 밀착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 후,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실패할 경우 미국과 일본, 호주,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함께 유엔 제제 외의 다자(多者)적 국제 제재를 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에 잠재적 악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규범을 준수하는 국가’라는 한국 이미지에도 손상이 갈 것”이라며 어떤 것이 한국에 나을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WMD) 차르’로 불렸던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20일(현지 시각) 화상 인터뷰했다.

한반도, 전쟁 위험성 높지 않아

-북한의 위협은 커지는데, 현재의 안보 태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한국인이 많다. 그래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또는 자체 핵무장 주장이 나온다.

“핵 억지, 또는 한반도에서의 전반적 억지는 매우 강하다고 생각한다. 전투기나 전함, 탱크 등 재래식 전력만 봐도 북한은 매우 불리한 입장이다. 김정은이 자신과 가족, 북한 대부분을 파멸로 몰아넣지 않고 전쟁을 시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할 이유나 방법이 없다. 그가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포함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북한의 취약점을 보완해서 한국의 공격을 억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본다. 그런데 김정은이 뭐라고 생각하든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의 (방위) 공약은 믿을 만하며 확장억제(핵우산)를 제공할 것이라고 미국이 한국에 재확인해 줄 필요는 있다고 본다.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통해 논의를 시작했고 연합 훈련 강화, 폭격기 같은 전략 자산의 전개 등을 포함해 확장억제를 강화할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제재 완화 대가로 北비핵화 목표 이뤄야

-장기적으로 김정은이 핵무기를 동원해 한국을 적화통일하려고 생각할 가능성은 없나.

“김정은의 할아버지(김일성)가 1980년대 핵무기 프로그램을 시작할 당시에는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선진적인 무기를 생산하고 공세적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북한의 역량은 경제와 함께 아주 나빠졌다. 그동안 한국은 최신 무기를 구매하고 개발해서 외국에 수출도 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하고 선진적인 경제 대국이 됐다. 가까운 미래에 북한이 한국의 군사적 우위에 균형을 맞출 수 있을 위험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2009년 11월 미국 백악관 회의에 함께한 버락 오바마(왼쪽) 당시 대통령과 게리 세이모어(오른쪽)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 /백악관

김정은이 한국에 군사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아주 위험한 도박이 될 것이다. 한국에는 2만8000명의 미군이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은 초기부터 자동 개입하게 된다. 대만의 경우와는 다르다. 미국은 대만에 대해 안보 공약을 한 적이 없고 (주둔하는) 미군 병력도 없다. 김정은이 당분간 핵전력을 포기할 가능성이 작다는 것에 동의한다. 당분간 미국과 한국, 일본이 핵 무장한 북한을 맞아 더 강력한 미사일 방어나 선제공격 옵션 같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보유를 받아들이고 군축 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비핵화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식적으로 용인하거나 승인하면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금지조약(NPT)상 비핵(非核) 국가 지위를 다시 고려하게 될 것이다. 다만 가시적인 미래에 그런 일(북한의 비핵화)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은 인식해야 한다. 김정은은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재개 제안과 윤석열 대통령의 남북 대화 재개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제재 완화 등의 대가로 이런 잠정적 조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장기적 목표인 비핵화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북한은 여전히 제재 완화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무역을 통해 외화를 버는 것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전술핵 韓 재배치, 反美 시위 야기 우려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정확한 입장은 무엇인가.

“워싱턴 사람들(바이든 행정부와 전문가들을 의미)이 하는 얘기를 전달하자면, 한국에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데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순전히 군사적인 것이다. 한국에 전술핵무기 저장 시설을 둔다면 북한의 공격에 상당히 취약할 수 있다. 미군은 북한이 공격할 수 없는 핵 운송 수단을 더 선호한다. 예를 들면 핵 추진 잠수함에 핵탄두를 탑재한 크루즈 미사일 형태로 둔다면 북한이 이를 탐지하거나 공격할 방법이 없다. 두 번째는 한국 정치다. 현재는 진보나 보수나 한미 동맹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워싱턴 사람들 일부는 전술핵 재배치가 한국 정치에서 대규모 시위나 한미 동맹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하는 매우 논쟁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 번째는 미국 내 군축 전문가들이 핵무기가 세계의 더 많은 곳에 흩어지는 것에 저항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정부 간 논의에서 미국 측이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해 들었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국민과 한국 정부가 핵무기를 만들기로 결정한다면 기술적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순전히 정치적인 것이다.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본이나 호주,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매우 비슷한 입장에 있다. 만약 미래에 미국의 (안보) 보장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위협이 점점 더 커진다면 한국이 NPT 체제를 탈퇴해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강한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이 위협을 관리하기에 충분할 만큼 계속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게 유지된다면 NPT 탈퇴의 잠재적인 부정적 효과를 판단해 봐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에 잠재적 악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규범을 준수하는 국가’라는 한국 이미지에도 손상이 갈 것이다.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일본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한국 스스로 안보적 영향을 계산해 봐야 한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에 이익인지, 동아시아에 핵보유국이 여럿 있는 상황이 더 나은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9·19 합의 파기 여부 신중히 결정해야

-북한은 사실상 2018년에 맺은 9·19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이것을 준수해야 하나.

“윤석열 정부가 결정할 일인데, 윤 대통령은 한국이 외교를 재개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외교로 가는 길의 장애물은 윤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이다. 북한은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분명히 합의 정신에 따르지 않고 있다. 다만 합의를 파기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윤 정부가 외교 중단 책임이 평양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기 때문에 더 그렇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중·러가 새 대북 제재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추가적 유엔 제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중·러가 현행 대북 제재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은 슬픈 진실이다. 미국과 일본, 호주,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함께 유엔 제재 외의 다자(多者) 국제 제재를 할 수 있다.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는 중·러 기업들에 대한 추가 제재도 검토해야 한다. 미국 재무부가 북한의 7차 핵실험 시 취할 수 있는 옵션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한국, 일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국방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합 훈련 측면의 조율은 최근 더 좋아졌다. 이런 것이 강화돼야 한다.”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미사일 방어는 한국에 까다로운 주제다.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에 편입돼야 한다고 보나.

“한국이 중국을 적대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결정했을 때 중국이 어떻게 보복했는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동시에 나는 한국이 중국을 향해 ‘중국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하기 좋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북한의 위협에는 중국의 책임도 일부 있다. 한국이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방위를 강화하기로 결정한다면 중국이 한국을 비난할 수 있는 입장은 못 된다. 결국 한국이 결정할 일이다.”

☞게리 세이모어

1953년생. 미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졸업 후 하버드대에서 행정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2009~2013년 백악관 군축·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을 지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2000년에는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백악관 비확산·수출 통제 담당 선임국장으로 일했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당시에는 대북협상팀 일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대 교수다.